[연재] 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열네째 날. 차를 끈으로 묶어 달리다_최종림작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1-08 13:24

지옥의 랠리 열넷째 날

덥고 먼지 천지

📍 니아메 Niamay ~ 가오 Gao, 645km, 스페셜 구간, 총 주파 8,377km.

좋은 지면에서도 주자의 실수로 종종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 


흰개미 집 


간밤 호텔에 돌아오니 그때까지 차가 정비돼 있지 않은 채였다. 제롬을 믿고 한국 대사관에 갔다 온 것이 잘못이었으니, 새벽까지 한숨도 못 자고 엔진 청소 등 모든 걸 정비사 놈들하고 갈아 끼우고 정비를 했다. 우리 같은 가난한 팀의 슬픈 고난이다. 부자 놈들은 그저 저녁 파티하고 실컷 자는 동안 자가용 비행기 타고 온 정비사들이 밤새 잘 정비해 놓으면 머신(차)을 아침 출발선에 끌고 가 달려 나가면 그만인데, 우리는 잠도 못 자고 손수 정비해 출발 준비를 해야만 한다. 이건 자동차 경주 실력만으로 겨루는 것이 아닌 묘한 경주다.


아침 8시, 스페셜 스테이지(경주 구간)로 가기 위해 니아메 시내에서 접선 구간으로 출발했다. 지나가는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 곳곳에는 수도라고 하기엔 절절한 가난이 아프게 보인다. 그래도 호텔 옆 길가에는 내무부, 외무부, 법무성 등 사람 사는 동네의 겁나는 간판들이 붙어있다. 교복을 입은, 인형처럼 귀엽고 조그만 아이들도 보인다. 경주 출발점으로 가는 접선 구간은 니제르 강을 계속 거슬러 올라간다.


'니제르의 팔'이라 불리는 강과 

아침 햇살에 묻힌 마른 들판 풍경은

이방인의 눈에 낮설게 눈부시다.

이집트의 상류 나일 강이 그렇듯 

니제르 강의 푸르름은 

한 방울의 물도 사막을 적셔주지 않고 

서슬 퍼런 뱀 같이 꿈틀거리며 

짓궂게 흐르고 있다. 

목마름에 타는 사막 속 야박한 

청정함이 도도하기까지 하다.  


중간 체크 포인트(c.p)에서 도장을 받지 않으면 조난으로 간주된다. 나는 걸뱅이 꼴이 다 됐다. 


10시 4분. 0km. 출발하자마자 햇볕이 뜨겁게 깔리고 있는 들판은 오늘도 만만찮게 보인다. 먼저 출발한 놈들이 일으킨 먼지가 까마득히 하늘로 오르고 있다.

오늘은 말리 국경을 넘어 들어간다. 예상대로 지표는 깊고 굴곡도 심하다. 벌써 헬멧 쓴 머리가 흔들려 차 벽에 부딪히고, 의자와 허리에 유격이 생겨 터덜거림이 고통스럽다.


“흰개미 집 오른쪽 100m…, 50° 왼쪽 200m…. 염병할, 다시 오른쪽….”

로드 북에 흔들리는 시선을 애써 고정시키고 후렴조로 욕까지 붙여가며 나는 핸들 잡은 제롬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잠시 피스트가 나타나며 시계가 열린 사이 인삼 수통의 물을 꺼내 타는 목을 적셨다. 푸우… 향기가 대한민국 냄새다…. 정다운…. 정신이 든다. 어젯밤 날 안타까워하며 꼭 먹으라고 교포 한 분이 주신 인삼가루를 수통에 넣었더니 향기가 일품이다. 제롬에게 수통을 건네자 한 모금 벌컥 마시더니 온갖 인상을 쓴다. 더러운 손으로 혀에 붙은 인삼가루까지 긁어내고 있다. 머저리….


34.20km. 세카 마을 통과. 우리가 일으키는 먼지엔 아랑곳없이 깡마른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며 우리에게 박수를 친다.

57km. 미끄러운 자갈 피스트를 타고 있다. 시속 100km 이상인 차를 3단 기어로 내리며 핸들을 살짝 원하는 방향으로 채면 차는 그쪽으로 차체가 틀려 회전각을 잡아낸다. 제롬은 연습이라도 하듯, 차체를 왈츠로 돌리듯 가고 있는 날 쳐다보며 또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돌린다. 내가 돌았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제롬은 포기한 듯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아미타불….

스키드를 타는 포뮬러 선수나 길을 타는 랠리나 핸들이 아니라 뒷바퀴가 미끄러져 비틀려 회전 값을 얻어내 커브를 도는 것은 모두 똑같이 우리들이 주요 기술로 사용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물론 위험천만일 수도 있는 그 기술이 정확하지 않으면 차는 속도를 가진 채 길 밖으로 날아가 버리지만 말이다. 더한 것은 이런 넓은 들판이 아닌 유럽의 산간 좁은 길 커브에서도 나는 이 기술을 즐겨 사용하는데, 자로 잰 듯 회전 값이 정확하지 않으면 길 밖 언덕으로 날아가 버린다. 우리들 전문 용어로 ‘가속 드리프트’, ‘감속 드리프트’라는 것들이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우리를 끝없이 괴롭히는 원심력을 무시하고픈 주자들의 욕심이 만들어 낸 이 기술을 구사하다 나는 이미 몇 번 천당으로 굴러버린 쓰디쓴 경험이 있다. 기절도 했으며,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놈의 매력은 끊임없이 촌음을 빨리 달아나고픈 우리들로 하여금 뿌리칠 수 없게 만드는 죽음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

99.78km. 멀리 흰개미 집 뒤로 차가 넘어진 채 불이 붙어있다. 한증막 같은 차 안의 먼지로 버적거리는 입속이 가슴까지 새카맣게 타들어 가 나는 말문을 잃고 말았다. 나는 그저 고개만 가로저었다. 아, 하느님, 또… 입니까…?!


사막에서 지는 별


불이 난 차에 다가가니 차는 거꾸로 뒤집힌 채 타이어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타고 있다. 폭발 위험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순 없고 파일럿과 내비게이터는 이미 후송된 연후다. 흩어진 잔해와 방울져 흐른 핏방울이 모래를 물들이고 주변 언저리엔 노란 사막 꽃이 피어 열기에 몸부림하듯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못 볼 걸 본 듯 뒷걸음치다 차 안으로 뛰어들어 와 엄청난 모래를 흩뿌리며 혹성 탈출하듯 그곳을 벗어났다. 파일럿이 죽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99.78km. 차 지붕보다 높은 흰개미 집들이 붉은 모래땅에 솟아올라 사람이 사는 마을처럼 보인다. 대단한 개미들의 역사다.


180.80km. 전방 5km. 오아시스 나타남. 사람이 살다 버려진 모래 언덕 사이의 작은 오아시스다. 동남아나 니스 해변의 그런 늘씬한 종려수가 아니라, 소나무같이 가지가 제멋대로 퍼져 야생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처럼 빈 움막만 남아있고, 사람이 떠나버린 오아시스를 벌써 몇 군데나 보았다.


240km. 돌산 공격. 산줄기를 피해 줄곧 따라 내려왔으나 넘어갈 곳이 없다. 로드 북에서 사라진 곳까지 30분 넘게 산줄기 아래를 타고 내려왔다. 그러나 마땅한 공격 포인트를 찾지 못해 우린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십여 km를 돌아오다 모래 산 사이의 작은 돌산을 타고 오르기로 했다.


양동이만 한 돌들이 모래와 섞여 가히 미칠 지경이다. 차 하부가 솟은 돌덩이에 부딪히고 얹히길 수십 차례. 열기로 데워진 차 안에서 입 안의 버적거리는 모래를 씻어낼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다. 노란 먼지가 뜨겁게 데워져 눈앞에 맴돌며 내 몸 구석구석 제멋대로 드나들고 있는 듯하다. 내 폐의 반은 이미 이 사막 먼지로 차 있을 것이다. 살아서 파리로 돌아가면 노트르담 성당 앞 폐 병원에서 내 그곳을 고무풍선 같이 까뒤집어 씻고, 또 헹궈 집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421km. 오늘은 돌의 날이다. 돌무덤 위를 뛰어넘다 웅덩이에 박힌 차를 한 시간이나 걸려 꺼내놓고 보니 완충장치의 하부 쿠션이 부러져 있다. 제롬과 나는 낙담한 눈길로 서로 쳐다보고만 있다. 놈의 눈은 충혈되어 있고, 초점이 없다. 갑자기 놈이 불쌍해진다. 나는 제롬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연장을 가지고 차 하부로 들어갔다. 대체품이 더 없는 업소버 하나는 고장 난 그대로 대충 수리해 남은 80km를 강행하기로 했다. 별 효용은 없겠지만, 앞쪽의 머신과 차 하부로 연결되는 모든 부분을 비상 줄로 묶고 조였다. 차를 끈으로 묶어야 하다니.... 하는 수 없다. 이제 로드 북에 나와있는 모래 산줄기 두 곳만 잘 넘어가면 된다. 나는 현기증과 실신 기운으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이대로 영원히 잠 속에 빠져들어가고 싶기만 하다.


501km. 도착. 체크 포인트 통과. 

난장판 같은 공항 옆, 

비박 Bivouac 장소에 도착하자 난 

정신을 놓고 말았다. 

영롱한 꿈과 잠이 

범벅이 되는 순간들이다.


묶인 안전벨트를 풀어주며 

제롬이 나를 흔들어 

입속에 차가운 물을 넣어주었다. 

분명 맥주다. 

상큼한 맥아의 향이 뇌리 깊은 곳에서부터 

기억을 깨워 일으켰다. 

"그래, 인마, 마셔야 해..."


눈을 떴다. 

먼지 천지 넘어

멀리 붉은 노을 기운이 

온몸으로 섬세하게 배어왔다. 

마비된 몸의 구석구석에서 

불같은 열기가 일어나 

가슴으로 모이고, 

그것들은 이내 

역한 감정으로 변했다. 

멀리 유럽에서 

자체 위성중계 장비를 갖춘 비행기들이 

비참한 이 인고의 장소로 날아와 

우리들 몰골을 중계하기에 여념이 없다.


"다 미친놈들..." 

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다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우리가 뒤집히길 기대하며 구덩이가 있는 쪽 풀 속에 포진한 기자들, 그들의 기대대로 트럭 한 대가 이곳에서 전복됐다

톰북투의 모스크를 잠시 돌아보며, 왕관 같은 담벼락이 아름답다.

 사하라에 지다 최종림 작가 저서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다음 주에 계속...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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