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 지옥의 랠리 열여섯째 날. 산보다 큰 보름달 -최종림 작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1-24 16:03
덥고 먼지
사바나의 사람들
📍 톰북투Tombouctou-네마Nema. 590km. 스페셜 스테이지. 총 주파 9,385km.
랠리 경로 지도
7시 기상. 마지막 남은 방화복을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2만 리를 달려오며 모래바람에 태극기도 반이나 닳아버렸다. 누더기로 변한 차 앞에 니아메 대사관에서 준 새 태극기를 달았다. 낡은 태극기는 곱게 접어 품 안에 넣었다.
잠시 아침 정기가 새롭다.
심신은 이미 한계에 와 있고,
기름때와 햇볕에 익어
껍질이 몇 번이나 벗겨진 얼굴은
밤마다 사막 모기에 물려 사람 꼴이 아니다.
잘못 먹은 음식으로 이질 기운이 있고,
폐에 가득한 먼지, 햇볕 화상...
파리에 있다면
병원에 실려 가고도 남을 몸.
하지만 가다 죽더라도
난 모리타니아 사막을 넘을 것이다.
가다 넘어져 부서지는 날이 오면...
사하라 모래처럼
훌훌히 흩어져 버리면 될 것을.
가면 될 것을.
살아있는 한 포기하지 않으리라.
사막의 독수리
88.80km. 폭이 십 리도 넘게 흩어져 같은 방향으로 모든 주자가 달려가고 있다. 마치 금덩이라도 찾으러 가는 듯하다. 하지만 이 경주는 상금도 없다.
113km. 긴 모래 산이 근심 덩어리로 차창 앞을 가린다. 또 한판 만만찮은 승부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언덕을 오르다 한 번에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차가 멈추면 거꾸로 내려와 속도를 붙여 다시 공격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뺀 타이어 바람을 더 빼내어 공기압을 낮추었다. 압력계는 모래가 들어가 이미 사용불능이다. 제롬이 "하나, 둘, 셋!" 하며 소리 내어 셈을 하면 나는 그가 열을 셀 때까지 공기구멍을 열고 있다 막는 식으로 네 타이어의 공기압을 뺐다. 모래 지표와 접지 면적을 최대화시켜 마찰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300km. 종일 샘 두 군데와 가시나무 그리고 날개 쪽이 2m가 넘는 한 무리의 독수리만 봤을 뿐, 흩어져 간 차들도 보이지 않는다. 졸음이 몰려온다. 제롬도 졸고 있다. 간밤, 차 정비를 새벽까지 했으니 탓할 일이 아니다.
390km. 바시쿠누 마을로 가는 방향을 잃었다. 태양은 초원의 모든 걸 말리고 있고, 간신히 살아있는 숨결 속 물기까지 말릴 것처럼 덥다. 신경질이 절로 난다.
"에이 멍청아, 잠 깨! 마누라 시집가는 꿈 꾸냐?"
내 고함 소리에 제롬은 놀라 한쪽 눈만 빤히 뜨고 머리를 흔들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후우, 하느님, 이 도마뱀 좀 잡아가지시죠."
"안 돼, 다카르까지는 살려두실 거야."
대답 한번 또 얄밉다.
초원을 한 시간째 헤매다 외딴곳에 천막을 치고 사는 원주민을 만났다. 작은 천막 안에서 가족들이 우리를 신기한 듯 내다보고 있다. 염소 몇 마리 외에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들의 남루한 삶에 가슴이 시리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레이션과 비상 통조림, 초콜릿, 우유를 그들에게 다 주었다. 엄마 품에 안겨있는 어린아이는 턱 밑에 심한 화상을 입고 괴로운 듯 지쳐 울고 있는데 아이 턱 밑에는 진흙이 발라져 있다.
나는 없는 시간을 욕으로 중얼거리며 차 뒷짐을 풀어 비상약을 꺼냈다. 소독수와 바르는 연고, 먹는 약 등이다.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해가 한 바퀴 돌 동안 약을 세 번 먹이라는 시늉을, 마누라를 둘 가진 아이 아버지는 한참 후에야 알아들었다.
가무잡잡한 또 다른 아이를 안고 있는 좀 더 젊은 여인은 해진 얼굴 가리개로 애써 얼굴을 감싸 숨기려는 모습이 예쁜 얼굴이다. 나는 그 원주민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급히 달아나며 제롬에게 소리쳤다.
"엇, 제기랄... 인마, 우리보다 낫지 뭐냐... 젊은 마누라를 둘이나 데리고 사니 말이다."
제롬이 입을 풍선처럼 부풀렸다 터트리곤 양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사바나의 달밤. 하나도 벅찬 마누라를 둘씩이나 데리고.
"야, 저 사람들 텐트가 하나밖에 없던데... 밤에는 양팔 베개 해주며 같이 자겠지?"
에고... 인심 좋으신 이슬람의 하느님, 우린 하나도 벅찬데...
붉은 먼지 속 보름달
사바나 초원에서 잃어버린 바시쿠누 마을을 찾아 초원의 원주민이 알려주던 그의 손가락 방향을 나침반에 올리고 한 시간 이상을 달렸다. 불안한 마음 그지없다. 원주민 손가락 방향을 믿을 수밖에 없어 무턱대고 달리는 심정 한심하기도 하고, 허기진 눈은 감감해 온다. 그런데 웬일인가?
산 하나를 돌아 나오니
지평선 쪽으로 넘어간 앞선 행렬이 일으킨 먼지가
붉은 황토빛으로 피어올라 있고
그 아래 산자락에 보름달이 걸려 있는 양이,
산보다 큰 얼굴로 산허리에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이였다면
저걸 달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달이기엔 저 달은 산보다 더 큰 형상으로
여태 나는 저렇게 큰 달을 본 일이 없다.
방아 찧는 토끼 형상이
연연히 들어앉은 아프리카의 달은
고즈넉한 초원의 평화를 깨고
먼지 천지로 분탕질을 해대는 우리 모리배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내려다보는
어머니 같은 얼굴이다.
442.50km. 바시쿠누 마을 어귀에서부터 인가가 띄엄띄엄 나타나며 기겁하는 차 소리에 놀란 낙타들이 벌떡 일어나고, 개도, 염소도 달아나기 바쁘다. 자동차라는 걸 많이 경험하지 못한 이곳 개들은 마치 우리를 덩치 큰 순한 짐승쯤으로 알고 만만하게 달려들기도 하며 장난을 건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이곳의 염소들인데, 움직이는 모양새가 개처럼 활발하고 뭘 먹을 땐 앞발까지 사용하는 것이 신기하다. 마을로 들어서니 길에 평화로이 드러누워 있는 소들과 서 있는 당나귀들이 아예 비켜줄 생각을 않는다. 무슨 이런 것이 있냐는 듯 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기만 한다. 나는 빨리 가야 하는 심산에 애가 닳아,
"진짜 너희들은 소, 당나귀구나!"
하고 분통을 터트렸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을 외곽으로 지나갔어야 할 구간 코스를 우리가 마을 안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에궁... 미안."
몇 번 굴러 찌그러져도 개선장군처럼 접선 구간으로 들어오는 주자들
480km. 단단한 황토 땅과 모래펄 사이는 도로 턱에 부딪히는 충격만큼이나 크게 우리 주자들을 힘들게 한다. 권투 선수가 강한 주먹에 턱을 맞았을 때만큼 아찔하다. 차가 깨지듯 내는 충격음이 차 안에 울려 아주 큰 총소리가 난다. 이제 우리 애마는 더 이상 베르사유 궁전을 떠날 때의 화려하고 멋진 색깔의 모양새는 아니다. 더럽기는 집시들 차보다 더하다. 대부분 한 번쯤 굴러 마름모꼴이 된 채 그냥 달리는 차도 있다. 우리 차도 튼튼한 벨트로 감싸 묶고 달린 지 오래다. 찌그러지고 부서지고 한 귀퉁이는 아예 없다.
522.90km. 예비 연료 탱크가 새고 있다. 예비 연료 탱크는 차 뒷좌석을 없애고 그 자리에 200L 탱크를 설치한 것인데, 오후부터 나던 기름 냄새의 이유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 아직 70km가 더 남았는데 불안하고 참기 역겹다.
끝없는 밤으로의 여로
밤과 그 밤의 사막 속을
깊이깊이 들어가고 있다.
이젠 먼지도 보이지 않는
검은 세계의 심연은
대체 얼마나 깊은 것일까?
들어가도 들어가도 끝나지 않는
그 깊은 사막에 내린 밤은
날 어린아이로 만들어 두려움에 떨게 하고
그 언저리에 멈칫멈칫 다가오는 외로움은
차라리 소리 내어 울어버릴 수 있는 것이었으면...
멀리 집 생각 간절하다.
구름에 가려진 하늘 건너편에는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저들은 내가 보아왔던 그 정다운 별들이 아니라
모두가 딴 자리에 이방인처럼 앉아있다.
이 지경에... 아무래도 또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한 시간 이상을 달려온 지금까지 집도, 나무도 보이지 않고, 우리와 휩쓸려 함께 가야 할 한두대의 경주 차(우리 같은 가난한 주자는 4팀을 묶어 1대의 정비 차를 고용했으므로 그 4팀은 흩어지면 고장이 날 경우 불리함)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어둠 속에서 제2 주파기를 틀고 계산 시계도 작동시켰다.
570km. 달리던 차가 갑자기 휘청거린다. 보고 있던 로드 북에서 고개를 드니 차보다 큰 야생 낙타 두 마리가 차창 앞을 다 가리고 있고, 그걸 피해 내려 제롬은 온갖 몸동작을 다 해내고 있다. 맙소사... 놈들은 차 앞을 그냥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뛰어들었다. 놀라 우리의 전진 방향으로 같이 방향을 틀어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그건 도망이 아니라 같이 달리자는 것인데...
"염병할 놈들..., 어엇... 지랄... 머저리!"
제롬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차암 놈은 신음도 욕으로 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깊게 버티며 두 손으로 양쪽 어깨의 안전벨트를 잡았다.
"비켜, 개똥 같은 놈! 비키란 말이야...! 머저리 새끼!"
그리고 앞 범퍼에서 '우두둑 툭툭' 소리와 함께 차는 뒤집힐 듯이 또 한번 휘청거렸다. 제롬이 갖은 방법으로 놈들을 피해보려 온몸으로 노력했지만, 한 놈의 뒷다리 부분과 부딪히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놈들은 차와 세게 부딪히진 않았는데 400m나 환히 비추는 우리 차 서치라이트 앞을 내달리더니 방향을 틀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휴우."
나는 긴 한숨을 쉰 후 맥 놓고 있는 제롬의 어깨를 두들기며 위로해 주었다.
"역시 넌 최고야."
우린 차 앞으로 나가보았다. 압박벨트에 더덕더덕 묶여있는 차 범퍼에 낙타 털이 엉겨있다. 다행히 덜렁거린 범퍼가 완충작용을 해 놈들을 살린 것이다. 그게 딱딱하게 차에 고정되어 있었다면 놈들이 많이 다쳤거나 우리 차에 충격도 컸을 것이다. 그 녀석 다리가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지난번 대회 때, 낙타와 부딪혀 녀석들 몸체가 앞 유리를 깨고 차 안으로 통째로 들어오는 바람에 크게 다친 사람도 있었다. 긴 낙타 다리로 인해 그들과 부딪히면 차 안으로 그대로 낙타 몸뚱이가 들어오니 대회 본부에서 야생 낙타를 조심하라는 지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오늘 밤 우리가 그 일을 당할 뻔했다. 나는 낙타가 차 앞을 뛰어들 때까지 제롬이 졸았거나 방심했으리라 생각되지만, 최선을 다해 낙타를 피해 낸 그를 탓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말없이 달리고 있는 놈의 코털 수염을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인마, 아까 그 위급한 순간에 처리 운전만 해야 할 놈이 너 주둥이는 쉴 새 없이 움직여 욕을 해대더구먼. 차-암 신기하다. 거의 본능적 수준이야... 아마 넌 태어날 때부터 욕을 배워 나온 거 아냐?"
귓속에 총소리가 날 정도로 제롬은 주먹으로 내 헬멧을 쳤다.
"살려주니까 까불어... 인마, 길이나 찾아!"
사하라에 지다 p.189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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