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열한째 날_최종림작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5-12-18 14:53

물물교환



아가데즈 시장

지옥의 랠리 열한째 날

물물교환 

오늘은 22일간의 장정 중 유일하게 하루 쉬는 날이다. 엊그제 9일, 돌아오지 않은 차 중 6대는 완전히 사막으로 사라져 버렸고, 수많은 사고자는 응급조치와 수술 후 유럽으로 후송되었다. 오늘 아침 현재, 37대의 차가 어제 코스에서 귀환하지 않은 상태다. 그동안의 각종 사고와 낙오로 우리들 대열에서 빠진 차가 백여 대를 넘고 있다. 정확한 집계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난리 와중에도 나는 이곳, 아가데즈 읍 최고 큰 호텔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어젯밤 마의 계곡, 장장 500여 km의 마른 강바닥을 주파해 낸 일은 지금도 끔찍해 소름이 돋지만, 유럽에서 랠리 경주를 해온 내 경주 경력에 하나의 금자탑을 쌓은 기분이다. 내가 그동안 해온 3,4일씩의 랠리 대회는, 그것도 매번 생명을 건 것이었지만, 이 지독한 경주에 비하면 그건 동네 경주에 불과하다. 가슴 졸이며 부족 마을을 밤새워 지나온 일은, 웃지도 후회할 수도 없는 처절함 그대로 내 인생의 한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제롬과 내가 택한, 갈라진 와디의 코스는 가장 험준했던 곳이다. 밀가루 같은 강바닥 모래는 좁은 강폭이 모자라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짙은 먼지와 길고도 긴 밤의 행로는... 차라리 지금도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그 강바닥 굽이굽이를 빠져나오지 못한 주자들을 생각하며 그래도 HOTEL이라는 간판이 붙은 집(황토집이긴 하나)에 누워있음이 을씨년스럽다. 뒷간 같은 샤워장이지만 뜨거운 물이 나왔다. 아! 모래 바닥이 아닌 침대에서 잠도 자고... 파리를 떠나 처음 맛보는 문화 회귀의 행복감에 젖었다. 어제의 와디 500여 km 포함 885km 경주 코스를 오늘 새벽 4시 43분까지 주파해 낸 일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제 곧 말리로 넘어가게 되면 그곳에서 다시 모리타니아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해만 쳐다보며 나침반 270° 부근을 헤매야 하는 횡단 코스다. 특히 모리타니아의 사하라 횡단 3코스는 마의 코스라 칭하는 곳으로 이 대회의 절정을 이룬다.


아가데즈 시장 

갈수록 험난해지는 여정. 
어디만치에서
나와 내 차가 주저앉을 것인가? 
상상이라도 나는 생각지 않으려 애쓴다. 
우리의 체력, 차의 메커니즘, 순간의 지형과 속도, 
전복...조난...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낸다 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갈 것이다. 다카르까지.
기필코 대서양에 내 몸을 적시리라.
일본 사람이나
구미 사람들과의 경쟁 문제가 아니다.
야심 차고 공격적으로 끓는
한국인 내 피와 오만함을
그 무엇도 꺾은 적이 없었는데,
이 욕망의 불덩어리가
원시 속에 남은 이만 리 길을 못 가고
주저앉아야 한다면 
그것이 문제다. 
병약한 햄릿의 그런 
죽느냐 사느냐 문제가 아니다.

나는 애써 잡념을 물리치고 보조 트럭 요원들과 오후 내내 정성 들여 차의 모든 부분을 정비하고 물로 닦아냈다. 그리고 해 질무렵 읍내 난장판 시장 구경을 나갔다. 시내의 집들은 대부분 토담집으로, 길 쪽으로 나들이 문 하나뿐 창이 없다. 작은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선물을 달라 조르고, 키 크고 새카만 사람들이 큰 칼들을 가지고 다니며 반 강요로 물건을 사라할 땐 자못 경계심이 갔다.
 더구나 제롬은 나를 데리고 이 난장판 속의 으슥한 골목으로 한참 돌아 들어가 민속 액세서리 가게로 갔다. 묘하게 서로 고함을 지르며 값을 흥정하고 있는데 부르는 게 값이고, 깎는 게 값이다. 이곳 처녀들이 시집갈 때 목에 찬다는 아가데즈 수호신 목걸이를 몇 개 고르고 있는 나를 제롬이 가로막았다.
"이 촌놈 가만있어, 인마. 내가 흥정할 테니 넌 호주머니나 조심하고 있으라구." 그리고 그는 주인이 고개를 흔들 때마다 가지고 온 헌 옷과 약을 한 점 한 점씩 더 꺼내 얹어놓으며 물물교환을 한다. 나는 이 희한한 광경에 제롬의 얼굴만 쳐다봤다. 우리가 가지고 온 헌 옷은 그들에게 평생 입을 한 재산이다. 신기한 흥정 싸움을 끝내고 물건을 내게 건네주는 제롬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렀다.


악세서리를 헌 옷과 거래하는 제롬. 순은 장신구들이 놓여있다. 

아가데즈의 달밤


 어스름 밤이 오고 있다. 제롬은 다시 나를 데리고 골목 몇 개를 지나 이곳에 사는 그의 옛 친구 집으로 갔다. 거리 쪽으로 난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채의 토담집이 붙어있고, 많은 사람이 대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달빛이 붉은 토담 벽을 비껴 내리고, 안쪽으로 난 마당에는 아낙들과 아이들이 흙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아낙들은 웬 동양인의 얼굴에 놀란 듯 노래를 멈추었다. 그들은 밤빛에 나를 더 자세히 훔쳐보면서 수군대며 키득거린다.
"야뽀네(일본 사람)...","기네지(중국 사람)..." 
나는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가로저으며. 
"...No. non... 저 수이 꼬레앙(나는 한국 사람)."
이라고 몇 번을 일러준다
"꼬레? 꼬레앙?"
하며 고개를 갸우풍거린다. 한국을 모르는 것 같다.
제롬의 친구라는 사람은 칠순 노인으로 몸져누워 있었다. 


우리는 컴컴한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누워있던 노인이 자리에서 힘들게 일어나자 제롬은 그의 몸을 부축해 앉히며, "아이코 모하메드... 왜 이래... 응? 바보같이 아프긴..."못된 놈... 제롬은 나이 많은 그 노인네를 아이 다루듯 하며 말을 놓는 것이 아닌가? 병색으로 검은 그림자가 얼굴에 가득한 노인은 애써 웃으려 하며 우릴 바라보았다.
"이놈은 경주 짝궁 한국 사람이야∙... 기네지처럼 노란 놈이야, 히히." 나는 제롬이 정말 못된 놈으로 한방 쥐어박고 싶었으나, 나도 애써 웃는 얼굴로 노인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얄미운 놈... 조금 전 시장판에서 그렇게 깍쟁이로 불쌍한 장사꾼에게 값을 깎아대던 놈이 그의 친구라는 노인네에겐 간드러진 목소리로 얼리고 껴안고... 기생 자릿저고리 같은 놈. 그리고 가지고 온 새 옷들과 귀한 항생제 등의 약품을 몽땅 내놓는 것이 아닌가? 약을 먹는 요령과 적용 병을 하나하나 얘기하고 혹 노인네가 못 알아들었을까 봐 또 고함을 치며 용법을 알려주었다. 나도 가져간 우황청심환을 다 내어놓았다 "모하메드... 야... 너 죽지 마. 응?"
"다음에 올 때까지 꼭 살아있어야 해... 알았지 너?" 
아쉬운 작별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달빛 아래 마당에선 아직 아낙들의 노래가 들린다. 아주 단순한 가락의 노래를 한 아낙이 선창을 하고 나면 남은 아낙네들이 뒤따라가며 부르고 있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앞섶에 아이를 안고 몸을 흔들며 부르던 구성진 그런 노랫가락과 똑같다. 
 그날 저녁, 호텔에서 구운 양고기 다리와 맥주로 제롬을 초대했다. 먼지로 저며진 입속이 호사를 다한 음식과 술로 풍성해졌을 무렵, 웬 사람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말쑥한 검은 옷을 입고 낮부터 호텔에서 설치던 친구였는데, 식사 테이블에 다가와 한국식으로 공손히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경찰이라 소개한 그가 내민 명함을 보니, 그는 정보 경찰 요원이다. 아하! 그래서 오늘 낮에도 호텔 종업원들이 모두들 이 친구 앞에서 기를 못 펴고 있었구나, 나는 좀 불편한 어조로, "웬일이오?"
하고 물으니, 자기는 태권도 파란 띠인데 니아메(니제르 수도)의 자기 사범이 최 아무개라며, 오늘 낮부터 한국 태극기를 몸에 붙인 나를 유심히 보았지만 정작 내게 인사할 기회를 못 찾았다 한다. 깨끗한 불어를 구사하던 놈의 말씨조차도 거슬렸던 그가 갑자기 형제처럼 살갑게 다가왔다. 오늘 종일, 멀리서 나의 일거일동을 지켜본 이 친구에게 상당히 성가신 기분이 들었는데... 듣고 보니 기분 좋은 일 아닌가? 이 먼 곳까지 우리 태권도가 와 있다니... 혹시 내 소식 듣고 온 북한 대사관, 그런 놈이 아닐까 몸을 사리고 있는 터였는데 말이다. 나는 그를 테이블에 오게 하고 맥주와 양고기를 한껏 더 시켰다. 그는 다음날 내가 떠날 때까지, 그의 아랫사람들과 함께 온 성의를 다해 호텔에 머문 우리 일행과 대회 조직 임원들을 위한 모든 편의를 봐주었다. 고마웠다. 
떠나오면서 나는 그의 땀 배인 검은 뺨에 입맞춤해 주었다... 
아디오 사스...!

꿈꾸듯 움직이는 낙타의 행렬


모래가 깊어 체크 포인트에서 멈췄다 다시 출발하긴 정말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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