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과 울타리

주말에 도심 외곽을 지나가다 보면 주말농장을 운영하며 '에코힐링'을 즐기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이들은 땀 흘리며 흙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면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한다. 고생한 만큼 알찬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작은 행복은 결코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좋은 씨앗을 고르는 일은 출발점일 뿐이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랄 때까지 정성껏 돌보고, 새와 고라니로부터 작물을 보호해줄 울타리도 필요하다. 씨앗만 뿌리고 세심한 돌봄이 없다면 대부분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설령 운 좋게 살아남더라도 야생동물이 드나들며 망가뜨리고 말 것이다.
스타트업 창업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씨앗이라면, 지식재산은 그 씨앗을 보호하는 울타리와 같다. 그런데 많은 창업가가 빨리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지식재산 없이 진출한 시장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경쟁 기업의 모방과 기술 탈취라는 냉혹한 현실이다.
'바이오계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모더나의 창업자 로버트 랭어가 창업의 선결 조건으로 "강력한 특허부터 확보해 진입 장벽을 쌓을 것"을 강조한 이유다.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도 "사업 초기에 특허가 없었다면 우리 제품이 필연적으로 모방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성장 원동력으로 지식재산권을 손꼽았다.
비단 기술이나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다. 이는 브랜드가 중요한 로컬 창업이나 콘텐츠 분야에도 적용된다. 로컬 창업가가 상표권 확보를 놓쳐 브랜드를 빼앗기거나, 콘텐츠 스타트업이 캐릭터 상표권이나 디자인권을 확보하지 않아 '짝퉁 굿즈'로 큰 피해를 보는 사례가 허다하다.
지식재산의 중요성은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 따르면 특허와 상표를 확보한 스타트업은 자금 조달 가능성이 최대 17배 상승하고 투자금 회수(exit) 확률도 2배 이상 증가했다. 유럽연합(EU)은 창업지원 펀드에서 '강한 지식재산' 보유를 스타트업 투자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지식재산 확보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 세계 6억4000만여 건의 지식재산 데이터는 창업 아이디어의 중요한 원천이자 전략적 보호 방법을 배우는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지식재산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남들이 공통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과제,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시장의 빈틈, 만료된 특허에서도 재조명할 만한 비즈니스 아이디어 등을 찾을 수 있다.
지식재산을 창업의 출발선으로 삼을 때 아이디어는 비로소 자산이 된다. 지식재산처는 스타트업들이 단단한 기반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 확보부터 사업화 자금 지원, 분쟁 대응까지 단계별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도 스타트업들이 강력한 특허와 상표로 무장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혁신의 울타리를 촘촘히 세워 나갈 것이다.
어느새 온 사방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이때를 춘풍화기(春風和氣)라고 한 이유를 알 만하다. 이참에 움츠렸던 몸을 일으켜 근교로 나가 주말농장을 가꿔볼까 싶다. 먼저 든든한 울타리부터 세우고 말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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