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하라에 지다. 파리 -다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스물한번째 날 횡단의 끝, 그리운 대서양 -최종림 작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3-07 14:21

황금해안 길을 따라

지옥의 랠리 스물한째 날

바람. 구름




📍 제20코스 리샤톨Richard-Toll-생 루이Saint-Louis. 341km.

스페셜 스테이지. 총 주파 12,207km.



지금 내가 조난이 두려우랴


그러나 내 차의 주행거리는 15,217km가 넘고 있다. 경주 주파 거리의 차이가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맨 거리다. 그것은 3만 리 경주 거리보다 더한 절망과 두려움으로 우리를 힘들게 한 인고의 거리였다.


경주 조직위 시간 아침 일곱 시(현지 시각 아침 5시), 커피를 마시며 아침 브리핑을 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대망의 완주인 다카르에 입성하게 되니 모두의 큰 성공을 위하여 조심하라는 당부 일색이다.


“에이, 조심하라는 건 속도를 내지 말라는 건데…. 경주를 하지 말라는 거 아냐? 사탕수수밭 25km 스페셜은 또 뭐야?”


브리핑 장 뒤에 서서 듣고 있던 주자 몇 명이 제법 큰 소리로 빈정거린다. 돌아다보니 어제 해변 좁은 피스트에서 차체를 몇 번이나 부딪히며 접전을 벌였던 그놈 얼굴이 보인다. 내가 놈에게 주먹을 올려 보이니 놈은 어제처럼 또 혀를 쑤욱 빼 보이며 웃는 것이 아닌가?


엔진 과열로 불타고 있는 차 앞에는 주자의 이름과 혈액형이 명시돼 있다.


10km. 오늘은 경주 구간 거리가 짧은 대신 이곳 사탕수수밭 속의 늪과 미로 25km를 지독히 어렵게 만들어 그곳을 빠져나가야만 해변으로 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출발점에는 이 나라의 민속 음악과 함께 광대들이 악마의 얼굴로 화장들을 하고 우리 앞에서 펄떡펄떡 춤을 추고 있다.

“저게 환영 춤이라는 게지… 우리를?”

“원 참, 환영하는 것도 유분수지. 저게 춤이라고 추는 거냐? 우리나라 개다리춤도 저것보단 보기 좋다.”


평균 방향 180~200°.

하늘엔 구름도 해도 보이지 않는다.

묘한 날씨다.

시궁창 같은 사탕수수밭을 힘들게 지나

내륙으로 비껴 지나는 초원 속 피스트에는

초록빛 잎이 풍성한 나무들이 띄엄띄엄 서있다.

이곳은 생명의 땅이었다.

고목나무들 아래엔

잘 빗어 내린 스칸디나비아 여인의 머릿결같이

빛나는 긴 풀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삭막한 죽음의 사막에서 내가 지나온 20일은

2년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128.48km. 왼쪽 앞 타이어가 휠에서 벗겨져 버렸다. 

모래가 깊어 타이어 공기압을 줄이면서 공기를 너무 많이 뺀 것이 화근이었다. 빠지지 않으려고 깊은 모래 지표에 마찰을 많이 얻어내려다 오히려 벗겨져 버린 꼴이 되었다. 타이어가 모래에 빠진 것보다 더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이다. 꼴 좋다며 쳐다보고는 굉음과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차들이 지나갔다.


우리는 그물판과 담요를 포개 그 위에 조심스레 자키를 올리고 차체가 오르는 만큼씩 모래와 돌을 휠 밑으로 밀어넣었다. 차에 있는 딱딱한 모든 것 또한 다 그 밑으로 쑤셔넣었다 그리고 연이어 차체를 들어 올리는 자키 밑을 또 보강하고… 미치겠다. 지나가는 놈들이 내는 먼지를 입도 가리지 못한 채 그대로 마시고 있다.


160.20km. 부족 마을 옆에서 바로 좌회전해야 할 길을 모르고 지나쳐 직진했더니 열 대도 넘는 차가 그곳에 몰려있다. 아, 분통 터진다. 또 길을 잃고 저 멍청이들과 합류하다니… 쯧쯧. 나는 제롬이 분명 이들과 같이 휩쓸릴 걸 알고 조수석으로 그를 밀어넣곤 내가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과감히 지나쳐 온 부족 마을까지 되돌아갔다. 


제롬은 이 경주에서 벌써 두 번이나 조난 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조난 공포증에 대한 과잉반응은 경주를 망칠 수도 있는데 그들 대부분 이런 경우 경주를 포기하는 일이 있어도 여러 명 같이 몰려있는 것을 택하기 때문이다. 막막한 사막에서 혼자가 된다는 건 엄청난 두려움이다.


오늘 오후 내 간 큰 선택이 적중했다.


83km. 긴 긴 파도가 줄지어 몰려오고 있다. 

밀려오는 파도의 길이가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아 그 길이를 가늠할 수 없다.


적당히 젖어 굳은 모래땅을 택해 마음껏 달리는 차들 속도가 가관이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긴 모래 해안이 끝나고 다시 초원으로 들어섰다.


앞만 트이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주자들.


이곳에서 이 대회의 이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마을을 지나 초원으로부터 흩어지기 시작한 경주 차들이 대부분 로드 북의 지시를 다른 지형으로 오인하고 앞서간 차들의 자국을 따라가 버린 것이다. 항법사가 로드 북 지시대로 지형을 잘 읽고도 앞차들이 지나간 방향이 다른 곳으로 나 있으면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갈등도 잠시, 대부분의 차는 잘못 간 다수 차의 바퀴 자국을 무시하지 못하고 그리로 따라가 버린다. 


오늘 1등 출발한 스웨덴 선수 바타넨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시작해 2위, 3위… 줄줄이 그 방향으로 갔고, 뒤차들 모두 잘못된 바퀴 자국을 바보처럼 뒤따라갔다. 바보들의 행진이란 말은 이럴 때 쓰여야 할 듯하다. 다행히 그중 몇 명은 그 군중심리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들의 항법을 믿고 방향을 바로잡아 갔다. 그 주자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길을 잃고 돌아다니다 많은 차가 잘못 간 그 피스트 자국을 보지 못한 행운의 바보들이다. 그중 하나가 제롬과 나였다. 


오후 4시 전후로 1위 주자가 들어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 오후 5시 37분에 도착한 우리 주변이 평소보다 신기하리만큼 한가하기까지 하다. 대회 본부 인원과 이미 도착한 20여 대의 차뿐이지 않은가? 


오늘은 일찍 들어와 참으로 기분 좋은 모처렴의 여유 시간을 즐기고 있다. 밤새 길을 잃었다 도착하는 놈들의 몰골에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불구경하는 아이같이 좋아하는 바보스러운 내 모습이란… 쯧쯧. 저는 거의 매일 밤을 저리 죽을 둥 살 둥 당해와 놓고 말이다.


331km.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 대회 2륜 모터 부문에서 계속 1위로 달리고 있던 위베가 도착지 10km를 남겨두고 깊은 모래 피스트를 튀어 올라 나무에 걸리며 처참한 사고를 당했다. 우리가 지나는 피스트에는 그의 피가 얼룩져 있고, 구급 헬기가 부상 응급조치를 한 후 들것에 실어 옮겨 가고 있었다. 내일이 끝나면 그가 황금의 평생이 될 것을 놓친 것보다 그의 예술적 경지의 스피드를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될 것이 못내 안타까울 것이다. 

TV에서 가끔 보아온 그의 환상적인 질주는 절로 고개 젓게 만드는 친구였는데…. 이 파리-다카르 경주는 완주에 최고의 역점을 두는 경주이기에 경주 채점 시간이 다른 주자들보다 아무리 짧다 해도 완주하지 못하면 허사가 되고 만다.


십자가를 든 그들은 노예들에게 기독교식 축복을 내리고 기독교식 교육을 받도록 했으며, 일체의 아프리카 토속 종교 활동을 금지시켰다.

생 루이 해안에서 노예로 팔려가기 전 짐승처럼 쇠사슬에 묶인 그들. 1억 명의 아프리카인이 미주로 끌려갔다.


황금해안의 슬픈 역사


340km.

멀리 생 루이 해안이 보인다.

초가을 같은 날씨에

넓은 강폭이 바다로 내닫고

그 사이 여러 개의 작은 섬이

종려수에 싸여 있는 이곳은

세네갈 강과 아프리카 서해안을 끼고

한 폭 그림같이 자리한 도시다.


역사를 아는 누가

저 도시를 아름답다 하겠는가?

삼백 년 전

아프리카 서쪽 모든 해안 마을에

성경을 든 사람들이 배를 타고 몰려왔다.

그리곤 자연에 순응하며

가장 인간답게 사는 사람들을

쇠사슬에 꿰어 데리고 갔다.

철창에 그들을 가두고선

배에 가득 싣고 십자가를 든 채

잡아온 사람들에게 축성을 하고

재산으로 등재 시켜 큰 부자가 되었다.


황금해안

삼백 년 동안 이곳 해안으로 끌고 와

노예로 만든 인간이 1억 명이며

끌고 오다 죽인 무구한 사람 또한 1억 명이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느님 뜻대로 산다는 그네들은

어찌하여 이곳으로 인간 강도질을 왔을까?

아직도 이 세계는 그들 강자의 세상.

삼백 년 한 맺힌 역사에 대해

아무도 묻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지도에는 황금해안이라 표기하고 있는

저 아름답고 슬픈 해안 도시 곳곳에

한 맺힌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아멘, 아멘…


만신창이가 되어 결승점 다카르 붉은 호수에 도착한 태극 애마

아, 그리운 대서양.



최종림 작가 프로필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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