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도시 톰북투
지옥의 랠리 열다섯째 날: 덥고 건조
신기루의 유혹
📍 가오Gao-톰북투Tombouctou. 418km. 스페셜 스테이지. 총 주파 8,795km.

새벽 5시 기상.
일어나기가 몹시 힘들다.
체중이 많이 빠졌다.
마치 거인의 옷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33.40km. 앞서가던 차 한 대가 또 굴렀다. 출발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긴급 의료 팀(Speed Emergency)이 즉시에 투입돼 벌써 선수 구조가 이뤄지고 있다.시속 180km는 족히 낼 수 있었을 텐데, 파일럿이 많이 다쳤을 것이다. 이처럼 우린 이른 아침부터 생명놀음을 하고 있다. 싫다! 구기 운동 경기는 선수가 실패하면 공을 놓치고 투기 경기에선 얻어맞거나 넘어지지만 스피드 경기, 그것도 이 메커니즘 경주는 실수하면 인생이 걸린다. 벌써 낙오한 팀들의 숫자가 대단하다. 1월 1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앞을 출발한 400여 대의 4륜, 6륜 차 중 오늘 아침 출발한 차는 겨우 160여 대, 그리고 160대의 2륜 모터는 60여 대밖에 남지 않았다. 여유만만하고 기개 충천하던, 잘생기고 정겹던 그 친구들... 어디로 갔나. 많이 없어졌다. 너무나 많은 사고와 72시간 경과 퇴장 차들로 인해 출발 전에 대회 본부 측의 각별한 주의를 받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주자의 피와 고배의 눈물을 보아왔던가? 매일매일이 광분한 집단 히스테리 속에 정신없이 치러지고 있고, 이 매정한 속도의 카니발은 죽음으로 가는 지옥의 문이다.
93km. 강 건너 니제르의 마을이 어제 건너온 이편 말리의 마을과 평화롭게 마주하며 나룻배가 오가고 있다. 이웃처럼 사는 두만 강변 마을들도 저리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흙으로 된 작은 보루도 보이고, 새색시 같은 꽃이 분칠하고 웃고 있는 고즈넉한 마을이다.
137km. 지금 우리 앞은 먼지 일식이다. 줄줄이 앞서가는 차들이 일으킨 먼지가 대지 위로 피어올라 노오란 태양을 맨눈으로 쳐다보며 달려가고 있다. 차 안에 가득히 떠다니는 먼지를 속절없이 마셔야 하고, 그걸 모르는 듯 마셔대는 제롬도 불쌍하다. 가장 많은 사고가 이 먼지로 인해 일어났다. 시계 10~20m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곳을 현기증 나는 속도로 좌우로 피해 가는 우리는 아무리 경주에 노련한 선수도 크레바스와 라디에에 걸려들기 마련이고, 먼지에 가려졌던 앞 주자의 차를 종종 추돌하기도 한다.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카레이서가 경기 외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은 파리-다카르 경주에서만의 또 다른 위험 요소다.
정오. 끝없는 모래밭 위를 움직이는, 족히 500m나 됨직한 긴 카라반을 만났다.
사막에 있는 듯 마는 듯
소리 없이 조용한,
멈춘 듯 가는 듯한
낙타들의 순한 그 모습에
소름 같은 경외감이 든다.
길게 내민 목 끝에 바가지만 한
작은 머리를 매달고
하염없이 걷고 있는 저들은
속절없이 사막을 닮았다.
이 절박한 곳에서 저것들이라도
생명으로 없었으면
이 사하라가 얼마나 삭막했을까.
깊은 모래를 죽는소리로
굴러가고 있는 우리들 모습이
비열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소리 없는 낙타 대상을
멀리 떠나보내고 나니
그 반대편에 연이은 섬이 보인다.
모래사장이 끝나는 저 너머
번들거리는 푸른 바다와 함께
짙은 나무숲까지 우거진
크고 작은 섬이 나타났다.
서서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고,
또 다른 모양의 섬이 떠 온다.
한참을 바라보다
30° 서쪽으로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달려 나갔다.
가도 가도...
사막, 사막뿐...
바다가 나타날 리 없는 그곳은
어찌할 수 없는 황량함의 연속이다.
신기루...
몸에 미열이 있다.
갑자기 외로워진다.
아침 일찍 사고를 당한 주자. 너무나 많은 사고를 봐와 이젠 그 상황이 무감각해졌다.
아프리카의 사랑
사막의 생
말짱하게 신기루도 사라진 곳은 가도 가도 사막이 끝이 없다. 바다와 숲 우거진 섬들이 사라진 사하라는 내게 거짓말을 한 것 같았고, 잠시 그 거짓말에 풍성한 마음으로 바다를 탐했던 일이 바보스러워 은근히 화가 난다.
“바보같이... 없어진 바다에 약이 오르다니...”
이 험난한 사막에서 매일 죽을 듯 말 듯 보름이나 이 놀음판에서 살아있음에 나는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듯하다.
174km. 나침반 250°.
모래가 지루해진다.
한 치 오차 없이 더듬어 온 사하라 10,000km.
길 없는 곳.
갖가지 험한 지표를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몸으로 훑어 낸 나날에
소름이 돋는다.
모래 먼지 속, 사시나무처럼 흔들린
요동의 긴 스트레스를
더 받아 낼 곳이
내 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더 참아낼 수 없을 때
미치고 말 그런 순간을
매번 느끼고 있다.
217km. 말라버린 시멘트 색깔 모래 수렁을 헤매고
우린 둘 다 회색 스누피가 되어있다.
멀리 하얀 소금밭이 보인다.
호수 전체가 하얗다.
먼지가 일지 않는 소금 호숫가를 모양대로 타며 최고 속도를 냈다. 호수 왼편에는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죽어있는데, 사막에서 살다 죽은 나무들은 동물의 뼈 색깔을 닮아 처참한 모습이다.
무언가 억울했던 듯
뿌리를 하늘로 쳐들고
거꾸로 박혀있다.
팔 벌려 하늘에 애원이라도 하는 모양새다.
생명이 그리 좋은 것이어,
애타게 한번 살아 보려 한 욕망의 흔적이
그 모습에 오롯이 어려있다.
이곳의 고갈된 모든 물기와 기운을
모으기 위해 저렇게
엄청난 뿌리를 텃새로 내렸건만
한 번도 멋진 잎과 꽃을 피워내지 못한 채,
한순간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평생을 버둥거리기만 한
안타까운 형상들이다.
나침반 270°. 미쳐 나갈 것 같다.
석굴암 부처님은 동쪽 아침 해 앞에 앉았지만,
지금 모리타니아 사막으로 넘어가는 오후,
나는 지금 정 서쪽이다.
앞 유리창을 달라붙어
떠나지 않고 이글거리는 해는
부처님도 미쳐 벌떡 일어나고 말 것이다.
지금 나는 일어나기는커녕
핸들을 잡은 채 정면으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햇볕으로 보이지도 않고 끝도 없는 그 길로
고개 까딱 못하고 가야만 한다.
따가운 햇발에 얼굴을 내붙이고 있으면
내 속에 허파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더 있으면 미칠 것 같다.
햇빛이 더 내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앞이 안 보이는데 자동차 경주라니... 젠장...”
나는 소리 내어 투덜거렸다. 해가 땅 쪽으로 내릴수록 지표 상태나 지형지물 판별이 거의 불가능하다. 좀 더 가까이, 자세히 보려 목은 기린처럼 자꾸 앞으로만 빠진다.
“200m 앞 큰 나무 두 그루... 600m 앞 경사, 급한 내리막...”
내 투덜거림엔 아랑곳없이 제롬은 로드 북에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읽어내리고 있다. 부아가 치민다.
“에잇, 자식아. 앞이 보이질 않는데 쫑알거리면 뭘 해. 주둥이 닥쳐 인마!”
천자문 외듯 하던 제롬이 내 고함 소리에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의 두 손으로 하인 흉내를 내며 내 얼굴에 쏟아지는 해를 가려주었다.
평화로운 마을길
톰북투 카페의 여인들
나는 오늘 도착할 이 도시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갖고 땅거미 지는 해거름 사막을 사력을 다해 달려가고 있다. 톰북투! 우리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도시(village)는 일찍이 중세 유럽 탐험가들이 황금으로 뒤덮인 도시라는 먼 소문만 듣고 수십 번 탐험대를 꾸려 찾아 나섰다 결국 찾지 못하고 모두가 사막에서 아사한 전설의 도시였다. 12세기부터 황금으로 집을 짓는다는 이 아프리카의 작은 도시를 오백 년 동안 찾아 나섰으나 아무도 이 도시를 찾지 못했다. 십자군 원정 정도만 아는 유럽 사람 누구도 사하라를 건너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중세가 지난 한참 후 19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왕립 지리 학회는 이 도시에 대한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일만 프랑이라는 엄청난 돈을 준다는 현상금을 걸었었다. 사실 중세 때 이미 이 도시는 25,000명의 학생을 가진 대학이 있었으며, 우리가 몰랐던 많은 수학과 천문학에 대한 선지식을 가졌었고, 또 책으로 남긴 위대한 도시였다. 이뿐만 아니라 많이 생산되는 황금과 소금(암염)의 융성한 무역으로 사하라의 중심에서 실제 황금으로 성전과 왕궁을 지었었다. 프랑스 탐험가 르네 까이에(Rene Caillie)가 도착했을 땐 이미 모로코가 침략하여 대학과 왕궁을 다 파괴해 버리고 약탈한 이후였기에 옛날의 융성한 영화는 보지 못했다. 황금과 그 문명은 사라졌지만, 이슬람의 높은 윤리와 전통은 가난해진 그들 문화 속에 여전히 남아있다고 르네는 증언하고 있고, 지금도 유네스코가 가장 아끼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놀라운 일이다. 아프리카에 그러한 문명적 도시가 칭기즈 칸 시대에 사하라 한가운데서 아무도 모르게 문화적 사막 꽃을 피우고 있었다니...
만신창이가 된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나는 씻지도 않은 채 마을의 큰 모스크를 돌아보고 골목 안 타베른(카페)으로 들어갔다. 카페지기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술이 있냐고 물으니, 무슨 암호라도 알아들은 듯 그저 고개를 가로저어 보인다. 술을 주겠다는 긍정의 고갯짓이다. 프랑스산 백포도주 샤도네이가 차갑게 목줄을 타고 내리자 먼지로 말라있던 목구멍에서 행복한 휘파람 소리가 난다. 좀 더 버텨낼 수 있다는 마음의 울림이 알량한 술 한 잔에 녹아든다.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듬질했다.
“이제 며칠만 버티면... 대서양이다!”
“참자, 조금만 더... 최종림... 야, 인마... 죽을래?”
나는 이슬람 도시의 특유한 내음에 젖어들었다.
내 자리 앞에서 미국식 악센트의 두 여자가 마냥 시끄럽다. 미인들이다. ‘미인에게 인사 안 하면 큰 죄’라고 했겠다. 한 잔 마시고 간이 좀 커져, 윙크까지 하며 그들에게 인사를 하니 경주 중인 선수냐고 내게 물어왔다. 그렇다 하니 또 물어, 한국에서 참가하고 있노라 했다. 그녀들은 잠시 충격을 받은 듯 입만 벌리고 있다가 잠시 후 내게 거리낌 없이 그들 자리로 합석하자 청한다. 웬 행운...? 그들은 모녀 사이로 딸은 이곳 원조 단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고, 그녀 엄마는 미국에서 딸을 보러 왔다고 한다. 그녀들은 ‘인디애나 500’ 경주의 대단한 팬이지만, 이 랠리는 더 멋지다며, 남은 나의 장도를 위해 한 잔 사도 괜찮겠냐고 물었다(미국인답지 않게...). 나는 다시 샤도네이를 시켰고, 미인에게 얻어먹는 기분 좋은 잔을 드는데 제롬이 카페에 뛰어들어 왔다. 들어서자마자 내게 고함을 지르며 게르니카 저공비행 기총소사처럼 욕을 쏘아댔다.
“헐... 쥐새끼 같은 놈, 머저리, 잘도 빠지네.”
다행히 두 여인은 제롬의 프랑스 토인들 욕은 못 알아들은 듯했다. 나는 점잖게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그에게 조용히 앉으라 시늉을 했다.
그제야 제롬은 두 여자를 발견하고 놀라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죽어라 움츠리곤, 꼬리 내리는 개처럼 황송해하며 이 천적 같은 놈은 내 옆에 새색시처럼 가만히 와 앉았다.
‘도마뱀 같은 놈...’
저녁을 먹고 카페를 나오며 나는 제롬에게 할퀴듯 쏘아붙였다.
“넌 인마, 뭐든 종결판에 나타나 날 망하게 한다니까... 염병할!”
찍소리 없던 제롬이 골목을 다 돌아 나와서야 구시렁거렸다.
“너한테는 아니야, 예뻤지만, 한 여자는 너무 늙었고... 한 여자는 너무 어려었야, 인마.”
사막의 아침 식사
니아메 대사관애서 얻은 새 태극기를 달고 차 정비 중 미소년이 태극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예쁜 녀석
최종림 작가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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