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세 읽는 자본시장 전략

손자는 '손자병법' 허실편에서 "병형상수(兵形象水)"를 말하고 있다. 전쟁의 형세는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이 높은 곳을 피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전략 역시 시대의 흐름을 따라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 자본시장의 역사도 그런 흐름 속에서 발전해 왔다.
주식시장의 기원은 17세기 동인도회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주식시장은 투기와 폭락이 반복되며 신뢰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한 종이 주권이 거래되던 시절에는 거래가 늘어날수록 결제와 정산이 복잡해졌고, 이는 거래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러한 문제가 절정에 달한 것이 바로 1960년대 미국의 '페이퍼워크 크라이시스(paperwork crisis)'였다.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종이 증권으로는 결제를 처리할 수 없게 됐고, 결국 증권의 전산화와 중앙예탁 시스템이 도입됐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었다. 결제 주기를 단축시키고 시장의 신뢰를 높이며 현대 자본시장의 구조를 만든 사건이었다.
지금 자본시장은 또 하나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바로 자산의 토큰화(tokenization), 그리고 블록체인 기반 결제·정산 시스템의 도입이다. 블록체인 기반 토큰증권은 거래와 결제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기존 증권시장은 거래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 결제가 이뤄지는 구조였지만, 토큰화 환경에서는 T+0에 가까운 실시간 결제도 가능하다. 디지털 지갑만 있으면 해외 투자자도 보다 쉽게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이 이동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토큰화된 증권 인프라가 구축되고 외국인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보다 편리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한국 자본시장으로 유입되는 글로벌 자금의 흐름 역시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해외 투자자가 들어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팔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미국 시장은 이미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DTCC 자회사인 DTC에 주식 토큰화와 관련해 비조치 의견을 내렸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는 2026년 하반기부터 S&P500, 나스닥100과 같은 대표 지수 기반 ETF와 러셀1000에 포함된 주요 종목을 중심으로 토큰화 주식 상품의 거래가 허용될 예정이다. 왜 이러한 종목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을까. 바로 글로벌 투자자가 이해하기 쉽고 신뢰할 수 있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코스피. 코스닥.같은 대표 지수, 우량 주식과 국채, ETF를 중심으로 토큰증권 시장을 설계한다면 해외 투자자의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의 성패는 결국 얼마나 많은 글로벌 자금을 끌어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자본 유입을 위한 가장 강력한 유인책은 결국 좋은 상품과 높은 접근성이다. 토큰화를 통해 접근성이 개선된다면 우리는 결국 좋은 상품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우리는 유연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자본시장의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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