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

루시퍼는 원래 천사였다. 신은 그에게 ‘나를 본떠서 너를 만들었으니 너는 내 힘의 주인이자 거울이다’라고 하면서 빛의 전달자라는 뜻의 루시퍼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로부터 그는 천사 가운데 으뜸되는 지위에 올라 천상에서는 신을 제외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를 물려 받았다.
어느날 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중앙에 놓여진 텅빈 보좌를 바라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품게 된다. ‘아, 내가 저 자리에 앉으면 보다 지혜로운 신이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는 그는 중앙의 신의 보좌에 앉아 천사들에게 ‘이르노니 모든 천사들아, 너희의 훌륭한 통치자인 나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한다. 마음이 여린 천사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 소식을 듣고 돌아온 신은 격노하여 ‘루시퍼야, 이제 오만해진 너는 나의 적이 되었구나’ 하며 그를 지옥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영어에서 악마(惡魔)를 데블(Devil)이라 한 것도 서양에서 악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는 루시퍼와 인연이 깊다. 영어의 데블은 스페인어의 디아블로와 함께 그리스어 디아블로스에서 파생된 것이라 한다. 디아블로스는 신이 루시퍼에게 말한 대적자 또는 방해자, 적수를 뜻하는 것이다. 20여년동안 악마만을 연구해온 미국의 역사학자 제프리 러셀은 서양의 역사는 선악의 구별에서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구약보다는 신약성서가 더욱 악과의 투쟁을 강조해 신을 따르든가, 아니면 악마에 복종하든가 택일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피정복자에게는 선(善)이 정복자의 뜻에 따라 악으로 뒤바뀐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요즘 들어 부쩍 곳곳에서 악 소리가 나고 있다. 악의 축, 악의 화신이니 심지어 악의 두목이란 말도 들린다. 악의 뿌리가 어디인지는 모호한 듯 하지만 루시퍼처럼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오만함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 점에서 ‘남의 악을 응징하려고 할 적에는 그 사람의 속에 있는 신을 손상치 않도록 하라’는 호라이의 말이 새삼 명언처럼 되새겨지는 세상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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