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랠리 다섯째 날
맑고 바람 없음

엘 골리아-Golea-인 살라In-salah.679km.
파리로부터 총 주파 3.017km.
들판 야영은 추웠다. 커피와 보리 비스컷, 비타민 농축 젤리로 아침. 새벽 5시 기상. 6시 7분 출발. 엘 골리아 마을을 관통하여 셰바라 Chebara 방향. 나침 반 110°. 비교적 고른 피스트. 시속 180km로 달려 미리벨Miribel의 폐허가 된 보루 스페셜 구간 진입. 잠시 종려수 아래 마른 샘 앞에서 긴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전 9시 5분, 가끔 와디(마른 냇가)가 나타나는 것 외에는 53.50km지점까지 시속 200km 로 직선거리를 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다 와디 크레바스가 나타나기도 해 차를 10m 이상 미끄러지며 급정거하게 했지만, 오후부터 맞게 되는 200~400km까지의 코스에 비하면 이건 양반 가마 길이다.
68.70km 나침반 120°. 절대 피스트 탈 것. 큰 모래톱과 심하게 패인 웅덩이로 차가 튀어 오를 때마다 안전벨트로 묶지 않은 머리는 헬멧 무게까지 더하여 괴롭게 흔들린다.
수백 개의 와디를 계속 가로질렀다.
와디 속에는
앙상한 가시덤불이 모래 빛으로 말라
군데군데 모여있다.
언젠가 올 빗물을 기다리며
마른 몸뚱이를
끈기 있게 다독이는 것이리라.
생을 걸고 생을 위해
물을 기다리는 덤불..
우리네 인생은 이익의 향유라 했던가.
저 가시덤불의 생은
손익계산 제로,
인간의 생에 반(反)한다.
최종림 작가
107.32km. 피스트 벗어나도 좋음. 2km가 넘는 넓이로 차가 지나간 자국이 펼쳐진다. 갑자기 피스트가 급격히 좁아지며 경사 45°의 와디로 내려가는 비탈길, 군데군데 쌓인 돌무더기를 피해 여러 대의 차가 서로 지나가려 법석이다. 우리들은 본디 차례가 없는 원시인간들이다.
167.45km. 볼일을 보고 제롬과 운전석 바꿈. 운전복 안의 방화복 내의를 홀랑 벗어버렸다.
차에 오르기 전 둘은 손을 마주치며 짐승 같은 괴성으로 서로를 북돋웠다. 붉은 모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 코발트블루의 하늘빛이 가슴으로 흘러든다.
나침반 방향 150° 광막한 사막을 핏줄마냥 수천 갈래로 갈라진 와디를 가로지르는 코스가 나타났다. 모래 웅덩이와 커브가 같이 있을 때는 속도를 줄이자니 아깝고, 미끄러져 틀자 하면 웅덩이가 위험하니 난감 하다.
"전방 3km부터 피스트 벗어나면 안 됨. 방향 180° 전방 1.1km. 방향 110°로 수정. 800m, 600m, 200m 수정. 피스트 벗어남. 피스트 바깥 황야 상태 좋음. 바깥으로 나가라." 제롬은 내게 운전 방향과 상태를 열심히 지시하고 있다.
241km 지점에서 그가, "위험! 크레바스다. 위험! 아니, 절벽이다!" 라고 소리쳤다.
아뿔싸! 어찌 둘 다 그 절벽을 못 보았을까? 속도 120km에 급격히 3-2-1단 기어로 줄여 가며 브레이크를 연속적으로 눌렀다. 최대한의 마찰을 위해 오른쪽, 왼쪽으로 차를 틀어지게 하며 나는 속으로 연신 하느님을 외쳤다. 절벽 20m 앞에서 차의 감속 속도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직감하고 직선으로 끌리게 하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이러면 차는 엉덩이가 전면으로 180° 뒤틀리는 현상이 생긴다. 나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차는 둥글게 차체를 오른쪽으로 밀더니 200°가량 뒤틀리며 절벽 6m를 남기고 가까스로 멈추어 섰다. 휩싸였던 먼지가 사라졌을 때 내 차는 절벽 위에 남아있었고, 나는 운전대에 머리를 묻고 있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육신은 스포이트로 모든 에너지를 빨아내 버린 것처럼 텅 비어버렸다.
'에이, 머저리! 이 머저리!"
나는 제롬에게 욕을 퍼부어댓다
"이 멍청아! 60m 앞에 와서 절벽 신호를 해주다니... 아이쿠, 멍청아! 너 카레이서 맞냐?"
물론 경주자도 전방 관찰을 하지만 바로 지척의 지표를 훓어가다 보면 그 너머는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작년에 일본 팀이 이런 곳에서 비행기처럼 절벽을 날아내려 황천길로 떠난 사건이 생각나 온몸으로 진저리를 쳤다. 우리도 그 같은 꼴이 될 뻔했다. 맙소사..:, 하느님
우린 평소 말을 놓는 사이지만 그가 내 친구가 아니었다 해도 할 수 있는 욕은 다 쏟아부었을 것이다. 실컷 욕을 하고 나니 속이 좀 풀렸다(나는 제롬에게 내가 아는 모든 욕을 퍼부었지만, 놈은 내 욕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희한한 녀석이다).
최종림 작가
영국의 맹인 여행가 제임스 홀먼이 자신의 여행에 대해 피력하며 "불확실성이 내포된 벼랑 끝에서의 스릴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라고 했지만 상상하고 싶지 않은 불확실성이고, 나는 결코 이런 스릴을 다시 느끼 고 싶지않다.
계속 절벽으로 지면이 끊긴 와디의 연속. 이런 날은 500km 구간이라도 실제 주행 거리는 800~1,000km에 이른다. 595km 지점까지 왔을 때 완전히 밤을 맞고 말았다.
아직도 황야와 돌밭 계곡이 84km나 남았는데 심신은 허리케인이 훑고 간 바나나 이파리같이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더 가야 할지, 야영 후 새벽에 떠날지를 망설이다 30분만 쉬어가기로 했다.
커피를 끓이고 고단백 분말 가루를 물에 타 약처럼 마셨다. 절인 쇠고기와 뜨거운 커피가 조금의 여유를 준다.
검푸른 하늘에 총총한 별들이 인도 여인의 결혼식 의상에 수없이 박힌 비즈처럼 반짝거린다. 내가 아직 살아있어 저 별을 볼 수 있음이, 내 모르는 이름 없는 이에게 보내는 감사로 그윽하다. 한 수의 시가 절로 나온다.
지중해 대양에 절여진
내 노랑머리는
몇 년 전 꿈쯤은
색깔로 기억하지.
종일 천지는 해거름
백 년도 넘은
거리 끝에 오면
남은 노인들이 처마 밑에서
책을팔고 있었지.
알량한 사랑 이야기
달려가 버린 지혜
나는왜
쓰레기처럼 흩어져 있는 그것들에 연연하여
마음 편치 못해
몇 해나 이 도시를서성거렸나.
토막난논리들이
하늘에서
정신 빠졌다 밤 별이되어
사막으로 날아간 뒤
어젠
비가왔었지, 꿈에.
며칠째 젖은 찬바람 하늘 내음,
낡은 땅 끝에서는
그림자만큼 새로운기분.
복고풍 넓은 바지를 입고
슬픔이 부재된 연장들을
호주머니에 쩔렁이며
사랑 연습을하고
그때-
휘파람불었지.
소금 실은 낙타 무리가 재를 돌아가고 있다.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다음주에 계속...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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