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④] 봄날의 그리움 구로공단 이야기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3-06 11:32

1960~80년대 봉제·섬유 중심 구로공단, 그리운 이름

구로동 아파트형공장 담장 곁, 분홍과 연두 사이

천오백 원짜리 티샤쓰 색깔만 고우면 얼굴이 귀티 났다

1960~80년대 봉제·섬유 중심의 노동집약 공장지대 구로공단은 이제 먼 그리움의 이름이다.봄날의 그리움


박상봉


그리움이란 척추관협착증 수술 자리 같다


멀리 떠나와 완치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아프고 저린 뼈, 잔인한 봄날의 오십견이다


사춘기 앓는 어린 새처럼 너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

막데부르크*의 낙뢰처럼 온몸 관절 들쑤셔놓는다


이른 새벽 개똥지빠귀가 후드득 깃을 털며

집 떠났다 돌아오듯

너를 향한 마음 감출 수 없어 미련으로 사는 세월


갈 바 몰라 헤매는 통속을 말없이 지켜보던 너,

너의 웃음은 봄날의 햇살보다 더 환했다


구로동 아파트형공장 담장 곁, 분홍과 연두 사이


그리움에 나뭇가지 얹어 지은 집 속에는

너 대신 누가 어린 콩새처럼 잠들어 있을까


구들 밑에는 뱀이 똬리 틀고 앉았는지도 몰라


* 막데부르크(Magdeburg) : 독일 작센안할트 주의 주도이며 엘베강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다.


옛 구로공단을 신기술 지식산업 중심의 첨단 산업단지로 개편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아파트형공장들.

서울 구로동 중심부에 있던 키콕스벤처센터는 예전에 내가 일하던 곳이었다.


이 건물은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계획에 맞춰 2014년 1월 본사를 대구로 이전하는 바람에 매각되어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키콕스벤처센터를 매입한 민간업체는 이곳을 철거한 뒤 신축 건물을 올려 오피스텔로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는지 아직 가보지 못해 알 수 없다.


키콕스벤처센터는 1964년 국내 최초의 산업단지로 조성됐던 서울 구로공단(정식 명칭 :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구조개편하면서 세운 상징적인 건축물이었다.


2000년 준공된 이 건물은 한국 벤처시설 1호 빌딩이기도 하다. 지하 3층~지상 15층에 대지면적 7396㎡, 연면적 2만7494㎡ 규모로 정보통신 네트워크 구축 등 벤처기업 환경에 맞는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지어졌다.


옛 구로공단을 신기술 지식산업 중심의 첨단 산업단지로 개편하는 전초기지이자, 전국에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운영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의 본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키콕스 건물 앞에는 2개의 조형물이 있었다. 하나는 횃불을 높이 치켜든 초록빛 여인상이고 다른 하나는 ‘꿈·기술·미래 신산업의 터전’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기념 표지석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조형물로 여기고 눈여겨보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가만 살펴보면 두 조형물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아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였다.


한손에는 수출의 불꽃을 상징하는 횃불을, 다른 한손에는 봉제를 상징하는 실타래가 감긴 지구본을 들고 서 있는 ‘수출의 여인상’.

키콕스 앞에 서 있던 ‘수출의 여인상’은 1974년 8월 12일 한국수출산업공단(현 한국산업단지공단)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것으로 한손에는 수출의 불꽃을 상징하는 횃불을, 다른 한손에는 봉제를 상징하는 실타래가 감긴 지구본을 들고 있었다. 키콕스 앞 화단에 남겨진 여인상의 디딤돌과 키콕스 신축으로 방치됐던 ‘수출의 여인상’은 2014년 보수공사를 거쳐 센터 앞 공원에 다시 세웠었다. 


당시 구로공단의 주역이면서 산업화, 수출역군으로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땀흘려 일한 여성근로자들의 공적을 기리고자 세계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근로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 여인상의 정식명칭은 바로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근로여인상’이다.


‘구로공단’으로 불리던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에는 1967년 조성된 1단지 구역 구로동 일대에 섬유 공장들이 주로 들어서고, 1972년과 1976년에 조성된 2,3단지인 가리봉동과 가산동 일대에는 봉제와 전자제품 공장들이 각각 입주했다. 


그 당시에는 여성노동자 수가 60%를 넘었다. 공단의 주역이고 수출의 역군이었으나, 사람들은 여성노동자들을 ‘여공’ 또는 ‘공순이’라고 비하해 불렀다.


.구로공단의 주역이면서 산업화, 수출역군으로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땀흘려 일하는 여성근로자 모습.


여성노동자들은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악한 작업환경과 벌집촌의 낙후된 주거환경 속에서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야간학교에 다니며 주경야독하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 억척스런 여성들로 우리나라가 농업 중심의 후진국에서 선진 공업국가로 급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구로공단은 소설가 신경숙이 열여섯 어린 나이에 오빠들 뒷바라지를 위해 정읍에서 올라와 여공으로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신 작가는 낮에는 동남전기에서 일당 700원을 받고 스테레오 부품을 조립하고, 밤에는 산업체 특별학교인 영등포여고에서 공부하며, 이른바 ‘벌집’으로 불리던 단칸 셋방에서 오빠들 틈에 웅크리고 선잠을 잤다. 열여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 자신이 겪은 구로공단의 삶을 신경숙 작가는 소설 『외딴방』에 고스란히 재현해놓았다.


박노해 시인은 ‘가리봉시장’에서 구로공단 여공들의 삶에 대해 “하루 14시간 / 손발이 퉁퉁 붓도록 / 유명 브랜드 비싼 옷을 만들어도 / 고급 오디오 조립을 해도 / 우리 몫은 없어”라고 노래했다. 또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가리봉시장을 찾아 / 친한 친구랑 떡볶이 500원어치, 김밥 한 접시 / 기분 나면 살짜기 생맥주 한 잔이면 / 스테이크 잡수시는 사장님 배만큼 든든하고 / 천오백 원짜리 티샤쓰 색깔만 고우면 / 친구들은 환한 내 얼굴이 귀티 난다고 한다”라며 당시 가리봉시장 분위기와 고단한 여공의 삶을 살아야 했던 대한민국 누이들의 애환을 실감나게 전해주고 있다.



구로공단은 2000년 12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로 개명되었으며, 지식정보산업 중심의 첨단 디지털 산업의 메카로 변화하였다.

1990년대 들어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구로공단은 2000년 12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로 개명되었으며, 지식정보산업 중심의 첨단 디지털 산업의 메카로 변화하였다.


지난 50년의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 희생과 헌신으로 대변되는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의 삶의 애환은 이제는 기업가정신, 패기,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미래세대 G밸리의 ‘신(新) 수출의 여인’들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갈 주인공으로서 바통을 이어받은 의미와 염원이 여인상에 상징적으로 담겨있다.


그 여인상 덕택인지 옛 구로공단은 다시 기운이 되살아났다. 입주기업체 숫자만 해도 2010년 4월에 1만개를 넘어서 10년 전인 2001년 849개사에 비해 12배 이상 늘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수도에 1만개가 넘는 기업이 들어선 산업단지를 갖고 있지 않다. 1970년대와 2000년대에 옛 구로공단이 세운 두번의 기적은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구로공단, 그리고 그곳에 가면 입구부터 만날 수 있었던 두 상징물 속에 은밀히 새겨놓은 ‘봄날의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따름이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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