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정으로 맞서고 기로 이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4-21 22:22


정으로 맞서고 기로 이긴다





요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으로 인공지능(AI)과 디지털금융이 자주 거론된다. 이 두 분야의 전략을 설명하는 데 손자의 말만큼 적절한 표현도 드물다. '손자병법' '병세'에는 "범전자 이정합 이기승(凡戰者 以正合 以奇勝)"이라는 구절이 있다. 무릇 싸움은 정으로 맞서고 기로 이긴다는 뜻이다. 기본기와 원칙으로 전쟁을 치르되, 결정적인 승부는 창의와 변화를 통해 판가름 난다는 의미다.


이 말은 오늘의 국가 산업 전략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AI에서 '정'은 정부의 정책과 지원이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전력·반도체·데이터·인재·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해 기술이 성장할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반면 '기'는 기업의 영역이다. 더 나은 모델을 만들고 더 낮은 비용과 더 빠른 상용화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힘이 여기에 있다.


디지털금융, 특히 디지털자산 전략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자산,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토큰증권 영역에서 신뢰 가능한 규제 설계, 내부통제 및 이해상충 방지 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정'이라면, 그 위에서 결제와 송금, 토큰화와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다. 안정적인 규범이 신뢰를 만든다면, 혁신적인 서비스와 사업 모델은 실제 이용과 확산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기술 정책을 두고 흔히 규제냐 혁신이냐를 묻지만, 둘 중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가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이 없는 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기가 없는 정은 승리를 가져오지 못한다. 정부가 운동장을 만들지 않으면 기업은 뛰지 못하고, 기업이 뛰지 않으면 정책은 사문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 구조를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준다. 반도체지원법(CHIPS 법)을 통해 반도체와 AI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배치하고 AI 정책 로드맵으로 컴퓨팅과 인력 기반을 강화하는 것은 '정'이다. 그 위에서 오픈AI와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막대한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산업을 끌고 가는 것은 '기'다. 정부가 기반을 만들고 기업이 속도로 돌파하는 구조다. 디지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백악관은 2025년 1월 디지털금융기술 관련 행정명령에서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의 책임 있는 성장,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발전, 규제 명확성을 국가 정책으로 제시했다. 이어 같은 해 7월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이 통과됐다. 이제는 나스닥에서 모든 종류의 증권을 토큰화해 24시간 거래를 수행하기 위한 규칙 변경 등이 이뤄지고 있다. '정'으로 신뢰를 만들고 '기'로 승패를 가르는 전략이다. 우리의 길도 크게 다르지 않다. AI에서는 컴퓨팅과 데이터 활용 기준, 책임 원칙을 먼저 세우고 기업이 그 위에서 빠르게 실증해야 한다. 디지털금융에서는 신뢰 가능한 규칙을 마련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서비스와 사업 모델을 적극적으로 실험해야 한다.


손자의 말을 오늘의 산업 전략으로 옮기면 결국 한 문장이다. 정부는 '정'을 세우고, 기업은 '기'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 경쟁력은 원칙만으로도, 속도만으로도 생기지 않는다. 신뢰의 질서와 혁신의 기동성이 맞물릴 때 비로소 다음 패권의 조건이 만들어진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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