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영화②] 문인수의 시 《간통》과 영화 《실락원》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1-24 14:02

소문의 꼬리가 잡혔다. 한 줌 달빛이었다.

각자 가정이 있는 중년 남녀의 사랑 이야기

간통


문 인 수


  이녁의 허리가 갈수록 부실했다. 소문의 꼬리는 길었다. 검은 윤기가 흘렀다. 선무당네는 삼단 같은 머리채를 곱게 빗어 쪽지고 동백기름을 바르고 다녔다. 언제나 발끝 쪽으로 눈 내리깔고 다녔다. 어느 날 이녁은 또 샐 녘에사 들어왔다.입은 채로 떨어지더니 코를 골았다. 소리 죽여 일어나 밖으로 나가 봤다. 댓돌 위엔 검정 고무신이 아무렇게나 엎어졌고,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흥건히 쏟아져 있었다. 내친김에 허둥지둥 선무당네로 달려갔다. 방올음산 꼭대기에 걸린 달도 허둥지둥 따라왔다. 해묵은 싸릿대 삽짝을 지긋이 밀었다. 두어 번 낮게 요령 소리가 났다. 뛰는 가슴 쓸어 내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댓돌 위엔 반 듯 누운 옥색 고무신, 고무신 속을 들여다봤다. 아니나다를까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오지게도 들었구나. 내 서방을 다 마셨구나. 남의 농사 망칠 녀이! 방문 벌컥 열고 년의 머리끄댕이를 잡아챘다. 동네방네 몰고 다녔

다.

  소문의 꼬리가 잡혔다. 한 줌 달빛이었다.

 

영화《실락원》영문 포스터 미술관에서 서로에게 끌림을 느낀 두 사람

서로에게 매몰되어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서로만 바라보게 되고, 비록 늦게 찾아왔지만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운명이라 생각하고, 서로에게 한 눈에 반해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 《실락원》은 각자 가정이 있는 중년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한직으로 쫓겨난 중년 샐러리맨과 식어버린 부부관계에 달아오른 육체를 주체 못하는 유부녀가 격렬한 사랑에 빠진 모습을 그린 멜로물이다.


구키 쇼이치로는 출판사 편집장에서 좌천해 조사실에 근무하고 있다. 남편이 의사인 린코는 서예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여성이다. 두 주인공은 이미 안정적인 가정을 가진 중년이었지만 구키와 린코는 세상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영원히 함께할 선택을 하게 된다. 이 둘은 서로에게 운명이었지만 너무 늦게 만났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이 이 세상의 전부이고 천국이라 믿었기에 모든 결 내려놓고 중년의 사랑에 몰입한다.


영화의 흐름과 분위기는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상영 당시 일본에서조차 큰 논란이 일어났기에, 국내 개봉은 14년이나 지나서야 할 수 있었던 문제작이다. 이 영화가 다른 불륜 영화와 다른 점은 불륜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전혀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키 쇼이치로는 제법 큰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승승장구해오다가 얼마 전 한직인 조사팀으로 발령받아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구키 앞에 그의 친구 키누가와 카즈키(衣川和記)가 근무하는 문화센터에서 서예 강사를 하고 있는  린코(松原凛子)라는 아름다운 유부녀가 나타난다. 조신해 보이는 린코는 잘나가는 의사 남편을 둔 서예강사다. 그녀는 단정하고 정숙한 여인이었지만, 구키의 억지스러우면서 한결같은 구애에 결국 그를 받아들인다.


최근 들어 부쩍 바빠진 구키의 아내는 남편의 거짓말을 의심할 여유도 없어보인다. 이런 아내를 뒤로하고 린코의 개인전에 간 구키는 애인이 아닌 VIP로 초청을 받았기에 서로 적당히 내외하면서 스릴을 즐긴다.


서로 끌리게 된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 행복의 절정을 끝까지 서로와 함께 하기로 하고 각자의 아내와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둘의 만남으로 인해 구키는 삶에 활력을 찾는다. 닌코 역시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며 구키를 통해 남편과의 사랑없는 생활을 달래게 된다. 

둘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  식구들은 물론이고 친구들 마저 속이며 둘 만의 시간을 갖는다.


두 사람은 주말마다 밀회를 거듭하면서 린코는 어느샌가 알 수 없는 성적 쾌감에 사로잡힌다. 둘은 너무도 간절히 서로를 원한다. 남편이 출근하기도 전에 집으로 전화 거는 이 남자의 모습에서 그녀는 불편함이 아닌 인생에서 지금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깊은 사랑을 느낀다.

영화 《실락원》한 장면

어느날 전화를 계속 시도했지만 린코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던 소이치로는 회사 부서원들과 회식 중에 전화를 받는다. 린코는 의붓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연락이 안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너무도 뜨거워진 두 사람은 장례식 중에도 만난다.


양아버지가 죽어 철야를 하던 날 밤에도 린코는 남편과 모친의 눈을 피해 상복차림으로 구키와 밀회를 즐기고 죄책감에 괴로워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두 사람의 마음를 더욱 불타 오르게 만든다. 더욱이, 구키는 비밀리에 집을 빌려 린코와의 사랑의 보금자리마저 꾸민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서 린코는 평소와 무언가 다름을 감지한다.


즐거웠어?


그녀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거짓말을 하지만 남편은 이미 그녀가 뭘하고 다니는지 다 알고 있다. 린코의 남편 하루히코(晴彦)는 사설 탐정을 시켜 두 사람이 만나는 걸 알아냈지만 이혼해줄 의사는 없다고 말한다.


남편과 집에 들린 구키 쇼이치로의 딸은 아버지 변한 걸 눈치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기에 어차피 두려울 것이 없다. 모두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다. 급기야 쇼이치로의 아내 후미에는 이혼을 요구하고 구키는 딸과 대화에서 아내가 진심으로 이혼을 원한다고 듣게 된다.

회사에서도 린코의 남편인 마츠바라 씨의 투서로 인해 좌천 당하고 집으로 돌와보니 식탁에 아내가 남긴 이혼장이 놓여 있다.


어머니에게 마저 외면 당한 린코와 결국 회사에 사표를 낼 수 밖에 없어진 구키 쇼이치로는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 키누가와는 쇼이치로에게 회사 자리를 적당히 비우라는 말로 충고하고 각별한 친구 사이였던 편집장마저 암으로 죽는다. 두 사람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국 사랑을 지키기 위해선 이미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

영화《실락원》한 장면

쇼이치로는 떠나지 말라고 만류하는 딸을 뿌리치고 집을 뛰쳐나와 린코와 여행을 떠난다. 자신을 붙잡는 딸 아이를 뿌리치며 린코와 마찬가지로 모든 관계 정리를 마친다. 지금 이 순간 행복의 절정을 끝까지 서로와 함께 하기로 하고 의미있는 음식으로 마지막 식사를 한 후 준비한 와인을 서로 나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구키 쇼이치로와 린코는 함께 동시에 죽는 걸 선택한다. 쇼이치로는 입에 담은 약을 린코에게 흘려주고 나눠먹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영원을 함께 한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나 유부남 유부녀의 사랑 이야기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다. 단지 정서적으로 심정적으로 얼마만큼 수긍할 수 있는지는 개개인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쉽지 않은 작품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도 많이 난다. 쉰 한 살의 남자와 서른 여덟 살의 여자가 진실로 사랑하게 되고 서로 떨어질 수 없어 함께 죽음을 맞는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 생각날만큼 슬프고 아름답다.

영화 《실락원》한 장면

 장미키스


 박 상 봉


  장미꽃 한 묶음 사왔다 


  식용이라고 해서 쿠키 대신 

  간식 삼아 씹어 먹으려고 사왔는데   

  인터넷 바다 아무리 헤매봐도 

  마땅한 장미 식용법이 없어

  하는 수 없이 화병에 꽂아두었더니

  아침에 장미가 활짝 웃었다


  저녁이 되니 장미가 시들어가고 있다

  콩차 한 팩 끄집어내 뜨거운 물에 우려 

  장미 한 송이 동동 띄우니 

  다시 장미가 활짝 웃었다


  콩차 마시는데 붉은 장미꽃 잎술이   

  내 입술에 와닿았다 


  어느 공업고등학교 담벼락에 붙어선    

  장미와 첫 키스를 나누었을 때

  장미와 입맞춘 그날부터 

  나는 심장이 없어지고 

  장미에 심장이 생겨났다* 


  오월이 오면 강렬한 숨결 내뿜는 

  붉은 장미의 유혹에 함부로 입맞추지 마라

  심장을 빼앗길지 모를 일이다


  만약 장미가 너무 좋아   

  심장 하나쯤 내어줄 요량이라면 

  그러면, 장미와 키스하라 


  심장 대신 가슴에 벼랑을 품고 살아도 좋다면 말이다


*최정란의 시 ‘장미키스’에서 차용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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