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는 믿고 살자

갑오년 새해도 시작된 지 벌써 4주가 지나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서로 덕담을 나누며 개인이나 사회가 더 편안하고 살기 좋은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러한 기원은 성별, 나이와 피부색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새해에 갖는 소망일 것이다.
그런데 살기 좋은 한 해의 구체적인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소망이 막연한 만큼이나 살기 좋은 한 해는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는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럴 때, 사회를 가정에 비유하면, 더 뚜렷한 모습이 그려질 수 있다. 사회를 가정에 비유하면, 많은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할 때는 어느 정도 도움도 된다.
사실, 좋은 가정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식구들끼리 화목하고 식구들이 즐거움과 어려움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가정이 살기 좋은 가정일 것이다.
매일같이 식구들끼리 서로 싸우고 미워하면서 심지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다른 식구들을 헐뜯는 상황이라면, 그런 가정은 살기 좋은 가정이라고 볼 수 없다. 더 나아가 한가족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들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편을 갈라 다투고, 서로 욕을 하고 비난하면서, 끊임없이 자극하는 일은 살기 좋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배려와 관용은 사라지고,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이 사라진 사회에서 저급한 감정의 찌꺼기를 여과 없이 쏟아내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한국사회는 어느 정도나 서로 화목하고 나름 괜찮은 사회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사실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사회갈등은 그리 믿을 만한 지표는 못된다. 갈등은 사건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은 외부로 드러난 갈등보다 갈등의 씨앗이 되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 더 관심을 갖는다. 세상에 대해서 갈등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매사가 껄끄러울 것이고 또 그만큼 갈등도 빈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서 갈등 정도를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갈등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직접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 대신, 모든 갈등의 씨앗이 되는 불신/신뢰의 정도를 파악하여, 사회갈등을 진단한다.
OECD 국가를 대상으로 한 2025년 OECD 보고서에서 한국은 부끄럽게도 신뢰가 대단히 낮은 사회로 보고되었다. 불신의 정도가 너무 높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부도 믿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신뢰 사회에는 주로 북유럽 국가들과 네덜란드 그리고 스위스가 포함되었다. 이들 사회에서 전 국민의 80% 이상이 타인에 대한 신뢰를 보였고, 각종 제도의 신뢰 수준도 70% 정도에 달했다. 반면, 저신뢰 사회에는 칠레, 터키, 멕시코, 그리스와 한국이 포함되었다. 저신뢰 사회에서 타인과 제도에 대한 신뢰도 40%대 이하의 낙제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불신사회라는 것이었다.
사람이나 제도에 대한 불신이 크다면, 가능한 한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것을 꺼릴 것이다. 제도에 대한 불신이 크다면, 정부가 하는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들 사이의 관계도 소원해질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도 믿지 않게 되어서 정책 효과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게 된다.
세계화의 부정적인 점도 많지만, 세계화의 긍정적인 점 중의 하나가 우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이 OECD 회원국이면서, 우리는 OECD라는 기준을 통해서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있다. 물론 OECD 회원국이면서, 한국사회의 치부도 많이 노출되었다. 이러한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로 여겨질 수 있다. 한국이 저신뢰 사회라는 OECD 보고서도 감추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말하면서, OECD 기준을 피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것을 통해서 한국사회가 개선되는 방향을 찾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살기 좋은 사회는 한마디로 고신뢰 사회이다. 병오년 새해 한국의 모든 시민들이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고신뢰 사회로 나가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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