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공인 세계사를 쓰자

우리에게 세계사는 무엇을 의미할까? 고등학교까지의 정규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해했다면 아마도 우리의 역사, 즉 국사 이외의 역사를 세계사로 생각할 것이다. 학과의 구분을 국사학과, 서양사학과, 동양사학과로 구분하고 있으니 국사 이외의 역사가 세계사이고 그 세계사가 주로 서양사와 동양사로 채워져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리 과목 역시 국토지리와 세계지리로 나누어지듯이 세계지리는 우리 이외의 지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교육의 흐름 속에 있다 보면 어느덧 우리에게 “세계”라는 인식은 우리 이외의 것, 즉 “남의 것”이라는 인식이 되어버리고, 세계에 대한 주인의식은 사라지게 된다. 쉽게 말하면 세계사는 “남이 쓴 것”을 우리가 읽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남이라고 생각하는 저들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우리가 읽는 세계사의 주역인 유럽이나 중국, 미국에 있어서 세계사는 과연 무엇일까?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세계사를 우리와 같이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물론 이들도 자국의 역사와 세계사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서술하긴 하지만, 세계사에 나오는 주역들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세계사는 “남의 역사”가 아니다. 주로 자신들의 역사이다. 즉 이들이 만든 역사가 “이들이 쓴” 세계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게 세계는 자신들이 활동하는 무대이지 남들의 무대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이들의 주인의식은 내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을 잠시 훑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학자가 쓴 <세계 외교사>라는 제목의 책을 보면 조선의 외교사를 담으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세계 외교사의 주역은 서양과 중국과 미국이라고 해도 크게 틀림이 없다. 반면 한국어로 <측정의 역사>라고 번역된 미국 학자가 쓴 책(원제목은 World in the Balance)을 접할 때 우리는 주로 유럽과 미국의 측정의 역사를 보게 된다. 즉 측정의 세계사는 자신들의 역사이다. 키신저가 쓴 유명한 <외교 (Diplomacy)>라는 책은 우리 교단에서도 세계 외교사의 교재로 빈번히 채택되는 책이지만 이 책을 보면 세계 외교사라는 것은 미국을 포함한 주로 서양 사람들만이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근대 세계 외교사의 주역인 것도 상당 부분 사실이다. 이러한 세계사의 인식은 경제사, 문화사, 사상사 등 다른 분야의 세계사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서양 중심의 세계사 서술방법이나 역사 인식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이미 진부한 주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서양 중심의 서술방법이나 인식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크게 창조적이지는 못하다. 대부분이 서양 중심의 서술, 혹은 중국 중심의 서술에서 소외된 다른 지역을 채워 넣자는 주장과 노력들이다. 진보적인 교과서나 책이 주로 이러한 주장과 노력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과 노력은 역시 세계를 “우리의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남겨 놓는 주장과 노력이다. 즉 세계에 대한 주체의식을 갖지 못한다. 이러한 인식의 틀 안에 갇히게 되면 우리는 항상 남이 만드는 세계와 세계사의 객체로 남게 되지, 우리가 직접 세계를 만들고, 세계사를 쓰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한국은 경제력, 인적자원, 문화력, 거기다 군사력까지 모두 포함하여 보면 사실상 이미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국력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의 국력이라면 세계사의 주역이 되어 세계사를 써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세계를 향하여 주체가 아닌 객체의 마인드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세계의 중심이 되자”라는 구호를 누가 외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남이 쓴 세계사만을 읽을 것이 아니라 우리도 직접 세계사를 쓸 때가 왔다. 민주화, 산업화, 한류, 세계적 기업 등 우리의 역량은 쌓여가고 있다.
이제는 세계가 주목할 혁신, 세계 표준, 평화의 달성 등 우리가 세계사의 장을 채워나가야 한다. 여야의 정치인들도 정략적인 계산으로 역사를 지우려고만 하지 말고, 세계 속의 역사를 쓰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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