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 모를 야당

한국 정치에서 야당이라는 말은 묘하다. 이름이 자주 바뀌다보니 당명을 특정해 말하기 어려울 때 하나의 통칭으로 사용되는데, 선거에서 크게 패하거나 ‘만년 야당’ 같은 자조적인 분위기가 되면 더 많이 애용된다. 한때는 ‘보수 야당’이나 ‘제도권 야당’으로 불렸다. 두 말 모두 외국어로 옮기기 어렵고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오해를 불러오기 쉬운 매우 한국적인 용어였지만, 야당 지지에 대한 주저거림을 표현하는 나름의 의미는 있었다.
진보정당을 만들려 했던 사람들도 기존 정치를 늘 ‘보수양당제’로 비판했고, 자신들은 그들과 ‘종류가 다른’ 정치세력이 될 거라 했다. 그런데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한 뒤 내부적으로 분열의 진통을 겪고 외부적으로는 야당 도움 없이 지역구 당선이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면서 ‘야권’이란 표현이 갑자기 많아졌다. ‘야권 후보 단일화’나 ‘야권 단일후보’ 등이 대표적인데, 그러면서 야당은 보수 정당의 이미지를 벗고 진보 세력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이 야권이라는 말도 외국어로 옮기기 어려운 한국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말이 자주 사용됨에 따라 진보의 의미가 공허해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야권 전체가 진보가 된 것인지, 야권 내 정당들의 차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모호했다. 아무튼 정당들이 각자의 정체성과 이를 집약하는 자신만의 이름을 간직 못한 채 야당이니 야권이니 하는 추상명사 속에서 뭉뚱그려지는 현상만큼 한국 정치의 문제를 잘 드러내는 일도 없어 보인다. 야당정치의 퇴행과 진보정치의 조락이 같이 가게 된 사이클은 이렇게 만들어졌고, 이제 진보정당의 문제는 야당의 위기에 부속되는 의미로 축소되었다.
야당 내 계파정치의 양상도 흥미롭다. 예컨대 제1야당만 보더라도 이념적 차원에서 계파를 분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내 진보파, 중도파, 보수파로 나누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사회적 기능 분화에 따른 이익정치의 양상을 갖는 것도 아니다. 어느 계파가 자영업의 이익을 대표하고 또 어느 계파가 화이트칼라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농업의 이익과 노동의 요구를 전달하는 계파적 채널은 있는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이익갈등과 계파적 차이는 상관성이 있기나 한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과거 ‘3김’처럼 재정 및 지지동원 능력, 나아가 인사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보스 중심의 계파정치가 지속된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과도하게 파편화된 정당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잠재적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몇 개의 무리들 같고, 때로는 문재인파와 그 나머지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정서의 덩어리로 양극화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규정하든 좋은 조직의 특징인 ‘신뢰의 제도화’와는 거리가 먼, 서로 신뢰하지 않음을 제도화해 놓은 것이 지금의 야당이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인이라면 ‘어떤 정당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가치나 이념을 중시하고 어떤 사회집단의 이익과 열정을 대표하려는지, 그것과 공익을 증진시키는 일이 어떻게 양립될 수 있는지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은 채, 소소한 개인 권력에나 매달리고 공천받고 재선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을 비즈니스라고 할 수는 있어도 정치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 행동의 규범적 토대가 튼튼해야 그 기초 위에서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가능하다. 그런 정당이라야 책임 있는 리더십이 형성되고, 개인의 발전과 전체의 발전이 양립하는 당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다. 또 거대한 국가 관료제를 상대할 수 있는 훈련된 당 관료제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향후 정권을 잡았을 때 부처를 관장할 유능한 예비내각 팀을 준비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정당정치가 최고의 시민 교육장이 될 수 있다. 위기라 하니 비대위 만들고 혁신도 해야겠지만, 의원 각자가 어떤 정당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 그것과 특정 계파에 속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한 사실은 어떤 인과성이 있는지부터 알 수 있었으면 한다. 야당의 위기 극복 방법을 묻는데, 대체 야당은 어떤 정당이고 그 속에 어떤 열정을 갖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모르니 뭐라 답할 방도가 없어 답답하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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