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도리들을 하시오”

“합하면 조선이 살 테고, 만일 나뉘면 조선이 없어질 것이오. 조선이 없으면 남방사람도 없어지는 것이고 북방사람도 없어지는 것이니 근일 죽을 일을 할 묘리가 있겠습니까. 살 도리들을 하시오.” 해방 후 우리나라가 통일 독립국가가 되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는 것을 지켜본 노혁명가 서재필 선생이 1949년 3·1절을 맞아 ‘조선민족에게 고한’ 말이다.
새해를 맞으면서 그 오래전에 서재필 선생이 한 이 말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지금 우리가 뭔가 ‘살 도리들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흔히 자라면서 가족공동체의 중요성을 교육받고 나의 가족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지독한 ‘부의 양극화’로 가족공동체를 지켜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요새 많은 사람들은 가족공동체도 그렇지만, 가족공동체의 터가 되는 사회공동체와 국가공동체가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심히 걱정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민족공동체는 남북한 간 분열과 대결의 심화로 인해 그 회복이 요원하게만 느껴진다고 한다.
TV에 방영되는 우리나라 개그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있는데, 소위 ‘못생긴’ 개그우먼을 내놓고 그 여자를 온갖 조롱거리와 가학성 재밋거리로 삼는 장면이다. 요새 프로그램들은 그 가학성을 은근하게 포장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 듯, 가학성을 드러내는 천박성과 폭력성의 정도가 지나치게 적나라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보니까 유치원과 초등학교부터 ‘외모 평등’, ‘남녀 평등’, 그리고 ‘인종 평등’이라는 ‘3대 평등’을 철저히 교육하던 것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만일 다른 아이들의 외모, 인종, 성별을 갖고 조롱거리로 삼거나 차별을 하면, 즉각 선생님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아이에게 알려주고, 아이는 벌을 받으면서 반성한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외모, 성별, 인종 문제를 중심으로 가해지는 가학성의 희생물이 되고, 학교와 사회에서 그러한 차별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어 어른이 되어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전혀 모르고 외모 차별을 소재로 삼고 있는 개그 프로그램을 함께 보면서 킥킥거리며 즐기는 것이다.
우리의 국가공동체는 어떠한가. 정부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능력이 있는 자’와 ‘능력이 없는 자’를 정의와 공평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여 국민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잠재력을 개발하여 공공선을 이뤄내는 능력이 점점 저하되어, 어느새 정치가 특정 세력의 탐욕에 봉사하는 모습으로 전락해 있다. 더구나 지도자와 정치의 능력 부족으로 국내 정치, 남북관계, 그리고 외교 분야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국민과의 소통이 단절되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정치는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라는 식으로 정체성을 확인해 가면서 조선시대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민란’의 공감대를 이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민족공동체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남북 간의 분단과 대결에 익숙해져 있고, 북한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공산당이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잔인하게 숙청까지 했다. 북한에 대한 실망이 크다 보니,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는 통일 담론과 정책이 과거보다 담대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제2공화국’ 하면, 혼란스러웠던 시대라는 것만 기억할 뿐, 그 시대에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과 대북정책에 대해 수많은 ‘대안정책’이 나와 통일 논의가 역사상 가장 풍부했던 시대라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무조건 당국 간 대화’를 제의했고,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에 심지어 ‘북한의 연방제 통일 방안’을 남북정상회담 의제로서 수용할 수 있고, 1987년에는 북한의 ‘남북정치·군사회담’ 제의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한 제의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군사독재자들까지도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의 가족공동체, 사회공동체, 국가공동체, 민족공동체가 무너지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코 ‘넘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새해를 맞아 어떻게든 살 도리들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큰 비전을 갖고 멀리 내다보면서 신발끈과 갓끈을 다시 매야 하지 않겠는가.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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