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시대

아주 사무치게 미워하는 마음이란 뜻을 가진 단어는 뭘까. 증오다. 증오 하면 곧장 복수란 단어가 떠오를 만큼 섬뜩한 정서다. 개인의 증오 정서와 복수는 막장드라마에서 차고 넘치게 볼 수 있다. 그래도 그건 가상이지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선 증오의 집단정서가 인터넷과 SNS를 가득 채우고 있다. 평소 타인에게 절대 사용하지 않을 험한 말과 욕설이 난무한다. 상대인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전쟁터를 연상시킨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어느새 증오의 정서가 압도하는 악플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이 지경에 몰린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익명의 사이버공간을 답답하고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불만을 방출하는 해우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증오라는 집단정서를 표출하는 게 쉽게 허용되니 사람들이 편승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80년의 길이 증오를 마음껏 드러내도 되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증오는 한국인의 뇌리에 똬리를 튼 역사 정서다.
대한민국사에는 늘 증오의 대상인 적이 존재했다. 긴 세월 동안은 적이 대한민국 안이 아닌 밖에 있었다. 한국전쟁을 도발한 북한이다. 전쟁으로 무너진 삶에 대한 원망은 곧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와 일체화되었다. 반공이란 이름의 증오 위에 쿠데타가 용인되었고 군사주의 문화가 만연했으며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다. 독재의 세월을 거치면서 또 다른 증오의 정서가 싹텄다.
1980년 광주에서 국가가 군대를 동원해 시민을 죽였다. 이때부터 민주화 투쟁에서 군부독재세력은 적이었다. 최루탄에 울고 선후배의 분신에 울고 감옥에 갇혀 고문당한 친구에 울던 시절에 적과 전투를 치르듯 시위를 했다. 마침내 민주화는 이루었으나, 민주화세대는 증오의 앙금을 털어내지 못한 채 언제든 반민주세력과의 전투에 나설 수 있는 민주투사로서 민주화 이후를 맞았다.
반공과 반독재로 상징되는 증오의 역사 정서는 네 번의 정권 교체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을 확연히 둘로 갈라놓았다. 민주화의 적자라 자부하는 진보의 무기는 과거사 청산이었다. 보수는 이를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역사에 대한 부정으로 인식했고, 복수라 여겼다. 보수는 다시 북한을 끌어들여 진보에 친북좌파라는 덫을 씌우며 맞섰다. 진보의 눈에 여전히 반공 프레임에 기대는 보수는 반민주 수구일 뿐이었다. 서로 질 수 없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기 진영의 과오는 덮고, 적대 진영의 상식적 행동마저 무조건 깎아내리면서 증오의 골은 더욱 깊어갔다. 이 비극적 현실에 정치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는 정치란 집단 간 견해나 이해관계가 다른 사안에 대해 상대와 토론하고 상대를 설득하며 공공의 가치 실현을 위해 상대와 협력하고 연대하는 거라 가르친다. 현실은 정반대다. 상대를 적을 대하듯 하며 과격하고 험한 말로 공격하면서 자신이 기대는 진영이 증오의 집단 정서를 체화하도록 부추긴다. 이념이나 정책이 아닌 정서에 기댄 정치를 하고 있다.
적대적 증오는 생과의 이별인 죽음마저 편을 갈라 조롱하는 참담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도 한 편에겐 증오 어린 혐오의 대상이다. 그의 죽음이 남긴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성찰할 제대로 된 살풀이판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주어진 소중한 성찰의 기회였다.일상에 응축된 증오의 정서를 털어내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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