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배신의 상처 속 이란의 침묵
이란, '핵 금지·호르무즈 개방' 美中 합의에 당혹…편들 줄 알았던 中의 외면
베네수엘라·이란·쿠바 흔들리는데 손 놓은 중국…北 압박감도 커질 듯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미국과 중국 정상 간 회담 결과에 가장 충격을 받았을 주체는 이란이다. 미국과의 전쟁이 안 끝난 상황에서 오랜 우방이자 가장 믿었던 뒷배인 중국이 이란의 바람과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이란 핵무기 보유 금지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의견을 모았다. 중국은 또 이란에 군사 장비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란은 이 같은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직접적인 공식 반응을 내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란 정권이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은 엄청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장기간의 초강력 국제 제재 속에서도 이란이 경제적으로 연명하고 핵 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던 '생명줄'이 중국이다. 중국은 이란 핵 개발을 은밀히 지원했고 국제무역 시스템에서 배제된 이란과 활발한 거래를 통해 경제 파탄을 막아온 방파제였다. 중국은 미사일과 드론 핵심 부품, 핵 관련 화학물질을 우회로를 통해 이란에 공급했고, 위성과 레이더 기술도 공유했다. 이란이 생산하는 석유의 80% 넘는 물량을 사주고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제공해 최소한의 숨통을 틔운 것도 중국이다.
그랬던 중국이 이란의 주요 생존 전략에 배치되는 입장을 내놓았으니 이란 정권으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핵무기 개발은 체제 수호를 위한 희망이었고 호르무즈 차단은 마지막 저항 수단이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이 되는 듯한 느낌일 것이다. 이란은 특히 미국과 진행 중인 종전 및 핵 폐기 협상에서 입지가 더 좁아졌다. 군사적 대항 수단이 상당 부분 무력화된 가운데 미국의 호르무즈 주변 봉쇄로 원유 생산 시설마저 불능화 위기인 데다 최대 원군 중국마저 태세 전환을 하는 등 사면초가에 몰리는 형국이다.
이처럼 중국이 오랜 친구 이란을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건 국제 정치의 냉혹함을 새삼 입증한다. '세계의 굴뚝' 중국은 에너지를 수입해 공산품을 수출하는 에너지 수입국이란 구조적 약점이 있다. 중국의 공산품 저가 공세가 가능했던 이면에는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로부터 헐값에 원유를 들여와 공장을 돌린 비정상적 구조가 있다. 그런데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권을 장악한 데 이어 미국-이란 전쟁으로 이란 석유 수입 길도 막혔다. 최근엔 러시아마저 달러 망 복귀를 타진하며 이상 징후를 보인다. 미국의 대중국 에너지 포위망 구축이 진행되면서 중국의 주요 에너지 수입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이란 거리에 벽화로 걸린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 초상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결국 중국이 이란을 외면할 수밖에 없던 배경에는 이 같은 정세 변화가 작용했다. 안 그래도 경제가 좋지 않은데 에너지 수급에까지 문제가 터진 위기 상황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처음부터 중국 측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중국 측으로선 현재 이란과 전쟁 중인 미국의 의도에 어긋나는 제스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물론 중국이 불가피하게 이란 문제와 관련해 미국 비위를 맞췄지만 향후 이란산 원유 수입을 완전히 끊거나 대이란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실제로는 행동에 나서지 않는 줄타기를 계속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국의 최근 행보를 지켜보며 압박과 공포를 느낄 나라로 북한이 꼽힌다. 중국은 최근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실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오랜 우방을 하나도 지켜주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에 의해 베네수엘라 정권이 교체되고 이란의 정권 수뇌부와 핵심 전력이 단기간에 제거된 데 이어 쿠바마저 경제 봉쇄로 흔들리고 있지만, 중국은 아무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이란 핵 금지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건 자국 실리를 위해 언제든 우방을 등질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특히 중국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도 재확인했다. 북한이 긴장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 일로 중국을 더욱 믿기 어렵게 된 김정은 정권이 미국과 직거래를 위한 묘수 찾기에 더욱 진력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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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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