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채의 마수(魔手)

우리나라 사채의 원조는 장리(長利)다. 춘궁기에 쌀 한 가마를 빌려주고 추수철에 한 가마 반을 돌려받으니 6개월 만에 반 가마를 챙기는 셈이다. 연리로 따질 경우 100%인 한 가마가 되니까 이 정도면 고리(高利)가 아니라 폭리(暴利)다.
사채꾼하면 흔히 베니스의 샤일록을 떠올리지만 우리에게도 ‘피도 눈물도 없는’ 수전노가 적지 않았다. 보릿고개에 내준 곡식을 제때 갚지 못하면 이자에 이자를 물리는 복리(複利)로 얽어맨 다음 재산을 빼앗는 것이 다반사였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이렇듯 땅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버는 게 사채꾼들의 생리다.
해방 후에는 달러이자가 유행했다. 미군부대에서 물건이 나오면 그 대금을 암달러상들이 빌려줬는데 이들은 하루에 1%의 이자를 붙였다. 이후 급전에는 달러이자라는 고리가 적용됐고 이런 식으로 돈을 모은 사채꾼들이 소공동과 명동일대에 둥지를 틀어 사채시장이 생겨난 것이다.
사채시장은 8·3조치(1972년), 장영자사건(1983년), 금융실명제실시(1993년)로 거의 10년 주기로 된서리를 맞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재도약하는 질긴 생명력을 드러냈다. 특히 직장인 신용대출, 자동차대출, 전세계약서 대출, 어음할인 등 신종 상품이 개발돼 수요를 창출하면서 사채시장은 급속도로 뻗어나갔다.
환란 여파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됨에 따라 사채를 빌려썼다가 고금리를 감당못해 파탄하는 서민가계가 늘고 있다. 웬만한 사채이자가 연 100%를 넘는다고 하니 작금의 저금리정책이 얼마나 겉돌고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고리채 마수에 걸려 해결사에게 당한 사람들이 속출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에 이르렀다.
고리채 폐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한 마디에 대금업법 같은 흘러간 아이디어를 내놓고 비책(비策)인양 말하는 것은 모양새가 썩 좋지않다. 고리채가 자르고 잘라도 고개를 드는 이유는 그런 돈이라도 쓸 수밖에 없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신용경색을 풀어 제도권금융이 서민층까지 손길을 미칠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처방이 절실하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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