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밝으면 우리는 저마다 거창한 설계도를 그린다. 더 높이 오르고, 목표 달성을 하기 위한 계획들이다. 그러나 진정한 마음 경영의 첫 단추는 ‘어떻게 설 것인가’ 보다, ‘우리가 어떻게 세워져 있는가’를 깨닫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인간은 대지에 발을 붙이고서야 비로소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는 역설적인 존재다.
광막한 창공 앞에 시선을 두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과 대면하게 되며 우리가 흔히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상태를 견고한 정복의 결과물이라 믿는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존재, 즉 '안트로포스(Anthropos, 위를 보는 자)'로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과 유한성 속에 살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본다는 것은 이상과 종교적 행위만을 말하지 않는다. 공활한 창공 앞에 시선을 두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과 대면한다. 끝을 알 수 없는 허공의 깊이는 역설적으로 인간 내부의 오만을 씻어내는 세례가 되며 나의 작음을 비로소 깨닫는 과정이다. 따라서 하늘을 보는 행위의 본질은 '겸손'에 있다. 자신이 만물의 주인이 아님을, 저 거대한 질서 속의 작은 점에 불과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은 오만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나 참된 마음의 경영을 시작할 수 있다.
'궤자지록'(潰者之錄)에 보면 옛날에 '운'이라는 노학자가 살았다 그의 성은 '부동(不動)'이라 불렸다. 제국의 태학사였던 노학자 '운(雲)'은 평생을 정좌(正坐)와 사유로 단련된 인물이었다. 그는 만물의 이치를 꿰뚫었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 구름처럼 몰려든 제자들 앞에서 늘 이렇게 호령했다.
"인간의 도(道)는 직립(直立)에 있다. 다리로 대지를 짓눌러 장악하고, 머리는 저 높은 하늘의 법도를 향해 꼿꼿이 세워야 한다. 흔들림 없는 자만이 천하를 다스릴 자격이 있다."
그의 수염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그의 걸음걸이는 산맥이 이동하듯 장중했다. 그는 스스로를 '지혜의 성인'이라 믿었으며, 그가 딛고 선 땅은 영원히 침묵을 지킬 것만 같았다.
어느 청명한 가을날이었다. 운은 여느 때처럼 뒷짐을 진 채 평탄한 서원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높았다. 그는 문득 자신의 위대함을 확인하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보아라, 저 높은 하늘도 결국 내 시선 아래에 있지 않느냐."
그 오만한 문장이 입가를 채 떠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천지가 뒤집혔다. 정지해 있던 서원의 고목들이 미친 듯 회전하기 시작했고, 견고하던 대지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의 발밑을 덮쳤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지독한 현기증이었다. 운은 마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짐승처럼 볼품없이 흙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입안으로 흙먼지가 밀려들었고, 그토록 자랑하던 도포 자락은 오물에 젖었다.
제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으나, 운은 일어설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때마다 세상은 거꾸로 매달린 채 요동쳤다. 의원이 불려 오고 만방의 명약이 쓰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한 달 뒤, 남루해진 몰골의 운 앞에 늙은 의원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스승님, 귀 안 깊은 곳에는 '이석(耳石)'이라 불리는 아주 작은 돌멩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제 자리를 이탈하여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운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 귀속의 모래알 하나가 나를 무너뜨렸단 말이냐? 내가 평생 읽은 수만 권의 경전과 내가 호령하던 대지의 권세가 고작 모래알 하나에 이토록 무력하단 말이냐!"
늙은 의원이 말없이 물러가자 홀로 남겨진 방이 운은 바닥에 엎드린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예전처럼 오만하게 올려다보는 하늘이 아니었다. 바닥에 뺨을 붙이고서야 비로소 보인 하늘은 무서울 정도로 깊고 아득했다.
그는 자신이 서 있었던 것은 귓속 작은 돌들이 이름 없는 자비로 제 자리를 지켜주었으며 대지가 그 연약한 발바닥을 말없이 받아주었기에 가능했던 '허락된 기적'이었음을 깨닫고 운은 처음으로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내가 섰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세워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운의 호령은 사라졌다. 대신 그는 길가에 흩어진 작은 돌멩이 하나 앞에서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제자들이 그 이유를 묻자, 노학자는 맑게 갠 하늘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다리는 땅을 밟고 머리는 하늘을 보는 것은 나의 작음을 고백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온전히 서 있는 유일한 이유는, 내 안의 작은 모래알들이 오늘도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덕분이란다."
우리는 꼿꼿이 서 있는 상태를 '완전한 승리' 혹은 '지배'라고 착각해서. 세상을 다 가진 듯 당당히 자부하지만, 인간의 직립을 지탱하는 것은 거대한 의지나 근육이 아닌 귓속 깊은 곳,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돌멩이인 '이석(耳石)'에 우리의 전 존재가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미세한 존재가 자리를 이탈하는 순간, 우리가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던 대지는 요동치고 세상은 무너져 내린다. 이것은 존재의 연약함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섰다고 믿을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격언처럼, 인간의 중심 잡기는 외부의 정복이 아니라 내면의 아주 미세한 균형에서 비롯됨을 잊어서는 안된다.
마음을 경영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작음'을 관리하는 일이다. 돌멩이 하나에 무너질 수 있는 유한한 존재임을 수용하는 태도가 도리어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된다.
겸손의 시선으로 나의 위치를 점검하고, 성찰의 태도로 '이석'이 제자리에 있는지 살피며, 땅의 소유에 집착하기보다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자체의 균형에 의탁한 위태로운 기적을 결국, 진정으로 '서 있는 사람'은 하늘의 광대함 앞에 무릎 꿇을 줄 아는 겸손한 자다. 무너짐을 아는 자만이 무너지지 않는 성을 쌓을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마음 경영의 정점이다.
새해 마음 경영의 첫 단추를 채우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지금 내 힘으로 서 있다고 자부하는가, 아니면 나를 지탱하는 수많은 ‘모래알의 자비’에 감사하고 있는가.
올 한 해, 모두가 먼저 채워야 할 첫 단추는 ‘하늘을 향한 겸손’과 ‘내면의 균형’을 살피는 일이다. 가장 높은 곳을 보되 가장 낮은 마음으로 발밑을 살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떤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참된 직립(直立)의 삶을 경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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