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공자의 마을, 덕목리에 시비가 세워지다
공석진 시인
'여기, 하늘의 뜻을 받들고 / 땅의 정기 품어 맑은 샘 솟으니 / 목마른 이에게 생명이 되노라 // 여기, 천하대장군 우뚝 서 / 하늘을 이고 / 지하여장군, 굳건히 서서 / 땅의 평화를 지키노라 // (중략) // 아, 찬우물 / 대를 이어 복이 깃드는 곳 / 천년이 흘러도 마르지 말고 / 만년이 지나도 변치 말자 // 하늘과 땅이 보듬는 / 우리의 고향 / 찬우물'.

공자의 후손들의 집성촌인 덕목리에 '찬우물'이라는 시비가 세워졌다. 찬우물(냉정,冷井)은 마을 한가운데에 여름철에도 얼음처럼 차갑고 맛이 좋은 우물이 있던 것에서 유래한다. 수질이 뛰어나 과거 아산만 포구 일대와 가까웠던 지리적 특성상, 바닷길을 오가던 어부나 길손들이 이 차가운 샘물로 목을 축이고 쉬어가던 휴식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덕목리는 덕행과 화목을 강조한 한 인물에서 이름이 유래한 지명이다. 그 인물이 바로 공자의 후손인 어촌공 공부(孔俯)다. 그는 이곳에 거주하면서 덕행과 화목을 강조하는 '덕목(德睦)'의 휘호를 남겼다. 그 이후로 이 마을은 공자의 후손들의 집성촌이 된 것이다.

덕목리에는 심복사라는 천년 고찰이 자리잡고 있다. 신라 9세기경에 창건한 절인데 높지 않은 광덕산 자락에서 서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참 고즈넉하고 고요한 사찰이다. 이곳에는 국가지정 문화유산(보물)인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있다. 유서 깊은 고찰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정적이고 맑은 이곳의 정취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공자(孔子)의 우리나라 곡부 공씨(曲阜 孔氏)’의 시조는 공소(孔紹) 로, 공자의 54대 손이자 원나라 때 한림학사를 지낸 인물이다. 그가 고려 충정왕 때 중국 사신으로 건너와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지면서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원나라 공주였던 노국공주가 고려 공민왕과 결혼하여 고려로 올 때 그녀를 수행하는 신하로 고려 땅을 밟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조선 시대로 이어지면서 명문 가문으로 자리잡게 된다. 공소의 아들 공여와 손자인 공부와 공은 등이 관직에 진출하며 사대부 가문으로 입지를 다진 것이다. '덕목'의 이름을 지은 '공부'는 조선 태종 때 지금의 서울시장 격인 한성부윤을 지냈고, '공은'은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킨 고려 유신으로 귀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30명에 이르는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는데, 중종 때의 사림파 대선비이자 기묘명현 중 한 명인 휴암 공서린(孔瑞麟)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조 대왕은 공자의 가르침을 조선 왕실의 근본으로 여기며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다. 부역이나 병역을 면제하였으며, 족보 정비 등을 국고로 지원하며 유교적 정통성을 배려하였다.
공자의 후손으로서 어촌공 공부(孔俯)의 역사가 서려 있는 이곳에 시를 지어 헌시하고 시비가 건립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뜻을 품고 있다. 이곳 공씨 가족묘에는 필자의 친조부모는 물론, 증고조부 그리고 모친께서 누워 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이곳에 들어갈 가묘가 있기도 하다. 시(詩)는 영혼의 지문으로서 자식과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공자 후손들의 마을인 덕목리 동네 어귀에서 시비(詩碑)로써 향후 유구한 세월 자리를 지킨다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며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시인 공석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