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을 파는 사회, 파편화된 양심, ‘도덕적 인간’은 왜 ‘괴물’이 되는가

매일 아침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우는 뉴스와 소셜 미디어(SNS)의 알림들은 현대 한국 사회가 마주한 깊은 균열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치적 극단주의, 세대 간의 반목, 젠더 갈등, 그리고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선심성 포퓰리즘까지. 오늘날 대한민국은 거대한 갈등의 전장(戰場)이다. 흥미로운 점은 갈등의 주체인 개개인을 따로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모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식을 존중하는 ‘도덕적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도덕적 개인들이 특정 집단의 이름으로 결집하는 순간, 사회는 타협을 잃은 가장 ‘비도덕적 사회’로 돌변한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가 경고했던 집단 이기주의의 비극이 오늘날 디지털 생태계와 결탁하여 더욱 잔인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갈등의 가장 큰 비극은 도덕의 기준이 ‘행위의 본질’이 아닌 ‘행위자의 소속’에 따라 결정되는 진영 논리에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의 허물은 사소한 실수나 거대한 대의를 위한 희생으로 포장되는 반면, 상대 진영의 과오는 용서받지 못할 거악(巨惡)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내로남불’식 도덕성은 저성장 체제 속에서 청년과 기성세대, 남성과 여성 간의 생존 자원 경쟁(제로섬 게임)과 맞물리며 세대·젠더 갈등으로 파편화된다. 직장, 군대, 가정 등 일상의 모든 공간이 갈등의 최전선이 되었고, 나 한 몸 살아남기 급급한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타자에 대한 연대라는 개인적 도덕성은 사치재로 전락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균열을 치유해야 할 정치가 도리어 갈등을 자본 삼아 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은 복잡한 구조적 난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적 고찰 대신, 특정 세력이나 성별의 분노에 편승하는 자극적인 포퓰리즘 공약을 던진다. 청년과 노년, 남성과 여성을 편 가르고 한쪽의 표를 얻기 위해 다른 한쪽을 악마화하는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방식이다. 당장의 표를 위해 국가의 장기적 미래나 연금 개혁 같은 필수 과제를 뒤로 미루고 미래 세대의 자원을 탕진하는 행태는 집단 이기주의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무책임한 비도덕성의 극치다.
여기에 확증 편향을 유도하는 미디어 알고리즘은 갈등의 확성기 역할을 한다. 이용자의 성향에 맞는 자극적인 콘텐츠만을 반복 노출하는 ‘필터 버블’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도덕적 교리를 완성하며 타자와의 소통을 스스로 차단한다. 분노와 혐오가 더 많은 조회수와 정치적 맹종을 낳는 왜곡된 생태계 속에서, 이성적인 개인들은 너무도 쉽게 비도덕적인 집단 광기의 부품이 되고 만다.
니부어가 간파했듯, 집단 간의 갈등은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선언적인 구호나 개인의 도덕적 각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갈등을 조장하는 시스템 자체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힘의 저울’이 작동해야 한다. 선거철 포퓰리즘 공약을 엄격히 검증할 수 있는 독립적 정책 평가 시스템을 강화하고, 승자독식의 정치 구조를 깨뜨리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아울러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 개선과 사회안전망 재설계 등 자원 배분의 규칙 자체를 공정하게 다듬어 갈등의 근본적인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갈등은 개개인이 악해서가 아니라, 분열을 팔아 이익을 취하는 비도덕적인 구조가 개인의 이성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는 집단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분노의 언어를 의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가 속한 진영의 허물을 먼저 직시하는 ‘자기 성찰적 지성’, 그리고 선거철의 달콤한 속삭임 뒤에 숨은 독약을 분별해내는 ‘실천적 시민 의식’만이 비도덕적인 사회의 광기 속에서 우리 공동체를 지켜내는 유일한 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