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외교의 전략적 사각지대와 제도적 연속성의 과제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이자 대표적인 문화 자산인 태권도가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무대에서 북한의 단독 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의 심사기구는 북한이 신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에 대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으며, 이달 말 최종 확정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태권도연맹(WT)을 중심으로 전 세계 보급을 주도하고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이끌어온 주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결과는 한국 문화외교의 전략적 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사태는 한국의 국제사회 내 기여도와 외교적 실익 간의 비대칭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유네스코 연간 분담금은 약 116억 원으로, 전체 분담률의 2.367%를 차지하며 세계 9위 수준에 달한다. 재정적 기여도 면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민족 고유의 상징성을 지닌 문화 자산의 선점 과정을 방어하지 못한 것은 문화외교 역량의 배치와 정무적 판단에 허점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북한의 태권도 단독 등재 시도는 이미 2024년 3월 공식 신청서 제출을 통해 예견된 일이었다. 스포츠와 무형유산을 체제 선전 및 국제적 입지 강화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온 북한의 일관된 전략에 비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선제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특정 정부의 실책이라기보다, 정권교체기마다 문화외교 정책의 기조가 단절되고 다변화된 외교적 과제 속에서 우선순위가 밀려난 데 따른 구조적 결과에 가깝다.
실제로 과거의 정책적 궤적을 살펴보면 연속성 부재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2018년 ‘태권도 진흥법’ 제정 이후 문재인 정부는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했으나 내부 조율 과정에서 최종 보류되었고, 이어 출범한 윤석열 정부 역시 북한의 등재 움직임에 대한 정밀한 모니터링과 선제적 대응책 마련에 미온적이었다. 현 이재명 정부는 올해 3월에 이르러서야 공식 신청서를 제출하며 남북 공동 등재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이미 북한의 독자적 심사 절차가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이었다. 외교적 협상력과 시간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한 채 사후 대응에 급급했던 셈이다.
정상 외교의 자원 활용 측면에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 대통령은 올해 유네스코 본부가 위치한 프랑스를 두 차례 방문하며 다자외교 행보를 이어갔으나, 태권도 등재와 같은 구체적인 문화 주권 과제를 관철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무적 노력은 표면화되지 않았다. 화려한 정상 외교의 성과 이면에, 국가 고유 자산의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한 세부 어젠다 조율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태권도는 단순한 스포츠 종목을 넘어, 전 세계 수련생들에게 한국의 가치관과 문화를 전파하는 핵심 소프트파워 자산이다. 이를 북한이 단독 선점하게 될 경우, 향후 국제사회에서 태권도의 역사적 정통성과 주도권을 둘러싼 문화적 헤게모니 경쟁에서 제도적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정권의 성향이나 대외 기조와 무관하게, 국가적 핵심 문화 자산을 보호하는 외교 전략만큼은 장기적이고 초당적인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유네스코 내 외교 채널을 총동원하여 뒤늦게 제출된 우리 측 신청서의 심의 과정에서 '남북 공동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정교한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나아가 향후 유사한 문화 자산의 유출이나 선점을 방지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부, 그리고 민간 기구 간의 상시 협력 체계를 고도화하는 등 문화 주권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인프라 재정비가 시급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