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과 빛

“아아, 나는 차라리 감옥엘 가겠다. 빚을 면하고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다면 몇해라도 좋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탄식이다. 40대 중반 무렵의 그는 헤어날 길 없는 궁핍에 빠져 있었다. 1864년 6월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형이 세상을 떠난다. 형이 남긴 부채와 많은 가족은 그가 떠맡아야 했다. 고리대금업자의 가혹한 빚독촉이 날아들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그는 창작에 전념키 위해 외국으로 도피한다. 그러나 빚공포에서는 벗어났으나 곤궁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 아침 호텔로부터 식사도 차도 주지 못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1865년 8월10일 친지에게 보낸 편지다. “빵 한 조각 못 먹고 물만 마시고 사흘을 지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다만 불쾌한 것은 밤에 촛불을 주지 않는 일이다.” 이틀 뒤의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그는 <죄와 벌>의 집필에 착수한다.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는 그의 사후까지 두고두고 빛나는 작품을 빚어낸다.
작가 이병주는 <죄와 벌>을 읽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읽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소설을 읽으면 이 무렵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 성당의 금빛 돔이 찬란한 거리 뒷골목에 주정뱅이, 창녀, 고리대금업자, 탐정, 성병환자 등이 오글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풍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심상 그대로이다. 실제로 그는 “음울하고 악취가 분분한 여름의 페테르부르크는 내 기분에 꼭 맞다”고 편지에 적고 있다. 관(棺) 속 같은 주인공의 다락방은 작가의 심경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빚더미에 깔린 나날에도 한줄기 빛은 다가왔다. 1866년 10월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최후이자 최상의 반려자를 만난다. 두번째 부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하늘이 그에게 보여준 호의이자 그간의 고통을 보상하는 은택이었다. 속기사인 그녀의 도움으로 그는 악질 출판업자의 마수에서 벗어났고, 그의 말년은 점차 안정을 찾는다.
경제 위기에 절망으로 빠져드는 이들이 늘어가는 요즘이다. 그중에는 빚공포에 떨며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도 있다. 그러나 관 속 같이 암담한 나날일지라도 사노라면 한줄기 빛은 언젠가 비춘다. 빚더미에 깔렸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절망을 다시 더듬어 본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