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김선굉
여남리 바닷가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바다를 안고
젖을 물리고 있었다.
수평선 부근에서 어미 바다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내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놈
생전 처음 본다며 빙긋 웃었다.
그때 이종문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여남리 바닷가에서
어린 바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고 했다.
이종문이 전화를 끊었다.
젖을 다 먹였을 때쯤
다시 전화를 할 모양이다.
어린 바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시에 나오는 여남리 바닷가는 경북 포항의 여남동 바닷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현재 행정명은 포항시 북구 여남동이고,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바닷가 마을이다. 지금도 여남방파제가 있고, 포항의 도심 해안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예전 어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포항 해안은 영일대에서 북쪽과 호미반도 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김선굉 시인은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바다에게 젖을 물리는 사람으로 자신을 바꾸어 놓는다. 더 재미있는 것은 수평선 너머의 큰 바다를 ‘어미 바다’, 물가에서 칭얼거리는 파도를 ‘어린 바다’로 갈라놓은 상상이다. 마지막에 이종문 시인의 전화가 끼어들면서 이 기발한 상상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처럼 굳어지는 것도 매력적이다.
방파제가 바다 쪽으로 팔을 뻗고 작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곳, 도시의 끝과 바다의 시작이 서로 어깨를 맞대는 동네다. 여남리라는 이름에는 그래서인지 번듯한 해수욕장보다 오래된 어촌의 냄새가 진하게 묻어난다.
방파제가 바다 쪽으로 팔을 뻗고 작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곳
김선굉 시인은 그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지 않는다. 바다를 안는다. 그것도 칭얼거리는 어린 바다를 품에 안아 젖을 물린다. 파도가 자꾸 발밑으로 기어오는 모습을 보고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밀려왔다 물러가는 파도는 배고픈 아이의 입술이 되고, 수평선 너머 넓은 바다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미가 된다. 사람과 바다의 자리가 슬쩍 뒤바뀌는 순간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종문의 전화다. “어디서 무얼 하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에 시인은 “어린 바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고 대답한다. 농담인지 시인지 구별할 겨를도 없이 전화는 끊어진다. 아마 이종문은 오래 알고 지낸 시인의 말버릇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바다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었겠는가.
좋은 시에는 가끔 사람이 장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사람을 기억하는 순간이 있다. 여남리 바닷가도 그렇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바다를 보았겠지만 어느 날 한 시인이 바다를 품에 안은 뒤부터 여남리에는 이전에 없던 풍경 하나가 생겼다. 젖을 먹고 자라는 바다.
그러고 보면 바다는 언제나 큰 것만은 아니다. 어떤 날에는 발목까지 기어와 칭얼거리고, 어떤 날에는 사람의 품을 빌려야 잠드는 어린것이기도 하다.
여남리 바닷가에 가거든 수평선만 바라보지 말 일이다. 발밑에서 자꾸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파도 한 자락을 내려다볼 일이다. 아직 젖을 덜 먹은 어린 바다가 거기 있을지도 모르므로.
여남리에는 이전에 없던 풍경 하나가 생겼다. 젖을 먹고 자라는 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