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도천정사로 읽는 문중사와 향토사의 접점-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2-02 08:45

대청사


마을에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있다. 문중에는 지역과 분리될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창녕 도천면 소재지 중앙에 자리한 도천정사(道泉精舍)는 이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이곳은 분성배씨 도천문중의 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도천이라는 마을이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향토사의 한 축이다.


조선시대 이후 많은 문중이 정사를 세운 것은 단순히 제향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정사는 학문을 논하고, 후손을 가르치며,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지역 지식의 거점이었다. 도천정사 역시 그러했다. 도천이라는 지명과 더불어 이 공간은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기록과 삶이 교차하는 장소로 기능해 왔다.


도천정사에 남아 있는 교지와 유묵, 유고와 판각본은 문중 내부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한 유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조선 사회에서 향촌 사족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보여주는 지역사적 증거다. 관직에 나아간 인물은 중앙과 지방을 잇는 매개자였다. 그들의 시문과 기록은 지역의 정신적 기준이 되었다. 문중의 기록은 곧 마을의 기억이었고, 도천정사는 그 기억이 보관된 장소였다.


정사 뒤편 사당에 모셔진 임천공, 인재공, 모정공의 삼위 불천위는 도천문중의 계보를 넘어, 한 지역이 존중해 온 인물상을 보여준다. 학문과 관직, 그리고 절제된 삶의 태도는 향촌 사회에서 신뢰의 근거였다. 이들을 기리는 제향은 단순한 가문의 의례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공유해온 도덕적 질서의 상징이었다.


특히 사당 뒤편에 세워진 10곡 병풍은 문중사와 향토사가 맞닿는 결정적 장면이다. 병풍에 필사된 선대의 시문은 개인의 감상이면서 동시에, 마을을 향한 선언이었다. 자연을 노래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문장은, 도천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규범이었다. 이는 글이 책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간 속에서 전승된 향토 인문학의 모습이다.




오늘날 도천정사가 여전히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이 공간이 과거의 유적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문중 구성원들이 유물을 정리하고 제향을 이어가는 행위는, 지역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향토사는 거창한 사건의 연대기가 아니라,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형성된다. 도천정사는 바로 그 축적의 현장이다.


급속한 도시화와 공동체 해체의 시대에, 문중 공간은 종종 ‘사적인 유산’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도천정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은 분명하다. 이곳은 문중의 정체성이자, 마을의 역사 창고다. 한 가문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시간을 읽고, 한 마을의 풍경 속에서 문중의 정신을 이해하는 일. 이것이 문중사와 향토사를 함께 읽는 이유다.


도천의 샘은 한 문중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물길은 마을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 물은 다시 지역의 역사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천정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문중의 기억을 어떻게 지역의 자산으로 확장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향토사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청암 배성근 시와늪문인협회 회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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