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에게 있어서 문장이란 꽃과 같다네. 나무에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사귀가 돋아나면 그제야 꽃이 피어난다네. 꽃을 갑자기 피어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이지. 경정을 궁구하고 예(禮)를 연구하여 널리 듣고 예(藝)를 익혀 가지와 잎이 돋아나게 해야 한다네. 이렇게 해서 그 깨달은 것을 펼쳐내면 글이 이루어진다네. 이런 것을 두고 문장이라고 하는 것이네. 그러니 문장이란 급하게 완성될 수는 없는 것이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청년 변지의에게 문장을 이루는 법에 관하여 권유한 것이다.
다산이 문장을 꽃으로 비유한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다. 사람을 나무로 비유한다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에 따라 꽃을 피우기도 하고 피우지 못하기도 한다. 꽃을 피운다고 해도 꽃의 모양도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모든 꽃이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인생 궤적이나 학식의 정도, 인품에 따라 그 사람이 쓴 문장은 차별화될 수 밖에 없다. 완성된 한 줄의 문장도 글의 성격에 따라 품격이 정해짐으로 훌륭한 문장을 담은 한 권의 책을 내놓는다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 특별함에서 비롯된 문장의 힘이란 바로 한 사람의 각별한 생애에서 비롯된 프로메테우스적인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를 '선지자'로 지칭하는 것처럼 일찌기 문장의 힘을 강조했던 다산 정약용은 선지자로서 손색없는 문장가였던 셈이다. 어떤 도서든 본편보다 우선하여 첫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prologue)가 프로메테우스의 접두어 'Pro'에서 처음 인용되었다는 사실은 그 중요성을 비추어 볼 때 당연한 일이다.

특히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문장은 초장(初場)과 종장(終場)이다. 이건 시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사실 시작이 밋밋하면 그 다음 문장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 첫 문장의 힘은 중반까지 쭉 이끌어 가면서 사고의 전반을 아우르며 글의 맥락을 이어 준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면서 마지막 감동을 배가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특히 첫 문장의 중요성은 '문장(文章)'이란 글자를 잘 살펴 보면 알 수 있다. 장(章) 자의 모양이 설 립(立)과 아침 조(早)로 구성이 되어진 이유가 있다. 이른 새벽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처음의 가치가 문장에서 증명되며 작문(作文)에서 반드시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봄이 오는 소리를 책상 서랍 모퉁이에서 들었다' 이 문장은 필자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고양시 백일장에서 '봄'을 주제로 제시했던 당시에,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고교 2학년 여학생의 작품이었다. 예술고도 아닌 인문고 학생의 글이라고 하기엔 남달라 문장력을 높이기 위한 습작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첫 문장에서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다음 문장이 기대되는 묘한 매력이 문학까지 전공했던 일반인을 제치고 장원을 수여한 결정적인 이유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단단하게 시작된 문장은 역시 중반을 거치면서 마지막까지 문장 낱낱을 조율하며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 강자의 탄압에 당당하고 / 약자의 구원에 손 내미는 지공무사의 직필이 있다 / 여기 민족의 가슴 일깨우는 민의의 외침이 있다 / 불의에 굴복하고 권력에 아첨하는 탐권낙세는 가라 / 반칙에 침묵하고 좌우로 치우치는 부화뇌동은 가라 / 프로메테우스 고통이 따를지라도 / 천상의 정의로운 횃불로 / 무력보다 강한 문장의 힘을 증거하리니 / 냉철한 지성으로 과유불급의 중용으로 / 칠흑 같이 어둔 세상 한 줄기 등대의 빛으로 / 바다보다 깊은 겨레의 얼을 수호하소서 / 진실의 심장 요동치는 불멸의 필봉으로 / 하늘보다 높은 민족의 혼을 앙양하소서'. 이 시 '진실의 심장 요동치는 불멸의 필봉으로'는 필자가 모 신문사의 7000호 발간에 부치는 글이었지만 정의가 붕괴되는 것을 앞장서서 막고자 하는 일갈이었다. 이렇게 세상을 향해 호령하는 용기는 전적으로 문장의 힘을 신뢰하는 바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앤서니 버지스는 '엔더비의 바깥(Enderby Outside)'에서 문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단어들은 문법의 안수를 받아 정해진 자리로 스르륵 들어가 대기의 먼지로 반짝이는 별처럼 의미라 불리는 불순물과 함께 반짝인다'. 모든 문장이 다 좋을 순 없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인식된 관념이 문장화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자멸적 의식에서 벗어나 확고한 자아를 바탕으로 정제되고 절제된 문장으로 타인의 운명을 개척하고 사회를 선도하겠다는 사명감을 필수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올곧은 작가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문장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공석진 문학관 대표 공석진
공석진
시인, 칼럼니스트 공석진문학관 관장, 추암문학아카데미 원장 전)파주문예대학 교수, 경기도문학상 수상 시집 '흐린 날이 난좋다. 외6권. 시창작론 글이 시가 되는 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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