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견딤이 쓰임을 만든다 -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1-26 09:28



정호승 시인은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견딤은 미래의 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 문장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단순하지만 단단하게 정리해 준다. 우리는 흔히 성공과 승리를 이야기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사실 ‘견디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모진 풍파를 만난다. 뜻하지 않은 실패, 관계의 균열, 경제적 불안, 건강의 문제까지. 견딘다는 것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고통스럽고, 때로는 자존감마저 깎아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딤은 인간에게 저력을 남긴다. 그리고 그 저력이 어느 순간, 쓰임으로 드러난다.


일본에는 천 년을 버티는 절과 궁궐을 짓는 장인을 ‘궁목수(宮大工)’라 부른다. 이들은 반듯한 나무만 고르지 않는다. 심하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나무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나무를 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가 가진 결을 읽는 일이다. 뒤틀린 나무는 뒤틀린 대로 하중을 받는 자리에 쓰이고, 휘어진 나무는 오히려 구조를 지탱하는 데 더 적합한 역할을 맡는다. 궁목수들은 나무의 ‘견딤’을 존중한다.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고통과 상처는 없었던 일로 지워질 수 없다. 그러나 견딤의 시간을 통과한 상처는 어느 순간 삶의 기둥이 된다.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힘이 되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구조가 된다. 견디는 동안 우리는 힘을 얻고, 동시에 지혜를 배운다.


우리는 종종 “이길 수 없는 시련”을 말하지만, 사실 인생에는 애초에 이겨야 할 상대가 없다. 인생은 경기장이 아니라, 건축 현장에 가깝다. 부서지지 않고 버텨낸 시간들이 쌓여 비로소 한 사람의 삶이 완성된다. 그래서 삶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견디는 것이다.


견딤은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나를 준비하는 가장 성실한 태도다. 지금의 나를 쓰러뜨리지 않고 지켜내는 힘이 언젠가 나를 귀하게 쓰이게 만든다. 구부러지고 뒤틀린 채로 남아 있어도 괜찮다. 견뎌낸 사람은 반드시, 그만의 자리를 만난다.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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