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묻다 _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5-12-20 12:56

— 반야바라밀과 ‘공’의 지혜' 무불 박석구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나는 이토록 괴로운가.”

그리고 그 답을 바깥에서 찾습니다. 신의 뜻이라 하기도 하고, 팔자와 운명 때문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이 질문을 조용히 되돌려 줍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밖에 있지 않다. 언제나 내 마음자리에 있다고.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반야는 지혜요, 바라밀은 건너감입니다. 괴로움의 강을 건너 피안에 이르는 길, 그 길을 밝히는 등불이 바로 반야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의 핵심은 ‘공(空)’에 대한 이해요, 공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사람이 괴로워하는 까닭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모든 괴로움은 분별에서 시작됩니다. 


좋고 나쁨을 가르고, 높고 낮음을 나누고, 내 것과 남의 것을 갈라 세웁니다. 이 분별은 오랜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고, 결국 이기심이 되어 마음을 옭아맵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늘 자기 눈높이로만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 눈높이가 곧 괴로움의 크기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상은 곧 공이며, 공은 곧 형상이다. 이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기에, 서로 의지하며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깊은 이치입니다.


 공하기에 존재하고, 공하기에 변화합니다. 우리가 붙잡고 놓지 못하는 ‘나’라는 생각, ‘내 것’이라는 집착, ‘이래야 한다’는 고집이 모든 것이 실은 잠시 머물다 가는 인연의 모습임을 알게 될 때, 마음은 서서히 풀어집니다. 공을 안다는 것은 비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공을 모를 때 우리는 고통을 실체로 여깁니다. “이 고통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이 괴로움은 나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나 공을 알면 고통도 하나의 지나가는 현상임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괴로움은 여전히 있지만, 나를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삶은 본래 고(苦)입니다.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그러나 반야의 지혜는 말합니다. 모든 행복은 고를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고를 피하려 할수록 괴로움은 깊어지고, 고를 바로 볼수록 지혜는 자랍니다. 고를 통해 배우고, 고를 통해 깨어나는 것, 그것이 반야입니다.

그러므로 공을 안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더 깊이 껴안는 일입니다. 


사람을 탓하지 않고, 운명을 원망하지 않으며, 자기 마음을 먼저 살피는 삶. 그 삶이 곧 수행이며,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마음을 바로 보는 데 있습니다. 그 자리에, 반야바라밀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시와늪 배성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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