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정치》상인과 서생

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기자

등록 2025-12-17 23:34

상인과 서생





“선비는 열 손가락이 유약하여 힘든 작업을 감당 못하니 밭을 갈겠는가, 김을 매겠는가, 거름을 주겠는가. …어찌하여 선비는 손발을 놀리지도 않고 땅에서 생산된 것을 빼앗으며 남이 노동한 것을 삼켜 먹는가. 대저 선비가 놀고 먹기에 땅에서 나는 이(利)가 다 개척되지 않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은 ‘전론(田論)’에서 선비가 농사꾼이나 상인, 공인 등으로 직업을 바꿔서라도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다산의 눈에 비친 선비는 무위도식하며 국가경제를 축내는 계층이었다.


그러나 유교적 민본주의의 구현을 궁극적 개혁의 목표로 삼은 그가 ‘선비 정신’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닐 터다. 그는 선비가 실리(實利)를 강구하여 농민에게 도움을 준다면 ‘하루를 열흘, 열흘을 백일’ 일한 만큼의 곡식을 분배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선비 정신은 우리 역사에 면면히 내려오는 문화적 뿌리다. 조선시대의 사림(士林)은 투철한 도덕성과 학문적 경륜,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諫言)을 서슴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하지만 민중의 현실과 유리된 채 정치적 명분 싸움에만 치우쳐 ‘사색 당쟁’의 폐해를 낳고 말았다.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근대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양반사회는 몰락하고 상인(商人)들이 변화를 주도하는 계층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인다운 상인’ ‘선비다운 선비’의 모델을 찾지 못한 탓에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리더십과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이재명 대통령이 각계 인사들에게 “정치인은 서생(書生)적 문제의식만으로는 안되며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한 것이 화제다. 일각에선 개혁구호에 매달려 시행착오를 겪어온 지난정권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는 모양이다. 정치적 함의야 어찌됐든 이러한 언급은 중국정부가 ‘진중구온(進中求穩·전진하는 가운데 안정을 추구한다)’과 함께 묘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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