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한가위 정치학
한가위 보름달은 공평하다. 동강 난 반도의 남과 북, 부자 동네와 가난한 마을을 차별하지 않고 고루 비춰준다. 그러나 둥근 달을 바라보는 마음은 놓인 처지에 따라 천 갈래 만 갈래다. 어려운 사람은 초승달에서 상현(上弦)달을 거쳐 보름달로 커가는 달의 변화에 희망과 기대를 싣는다. 한껏 오늘을 누리는 사람들은 보름달·하현(下弦)달·그믐달의 계단을 밟으며 초췌해지다 모습을 잃고 사라지는 달의 일생에서 성자필쇠(盛者必衰)의 철칙(鐵則)을 읽고 불안해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번째 한가위 보름달을 맞는다. 작년 재작년 보름달은 보름달 같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황 없는 날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취임 후 대통령으로 일이 손에 익어가는 듯하다.과거엔 야당 대표로 그렇게 발전(發電)한 전기로 나라를 돌리지 못했다.
60%까지 올라온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나라를 돌리고 바꿔야 제값을 한다. 실용을 앞세워 팔을 걷어붙인 건 옳은 방향이다. 노동개혁·규제혁파(革罷) 없인 한국 경제가 다시 햇볕을 보기 어렵다. 비위 맞추는데 이골 난 사람들은 솥뚜껑만 열면 된다 하지만 사실은 갓 아궁이에 불을 지핀데 지나지 않는다. 핵심 쟁점에 대한 합의와 입법 과정에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의회와 소통하는데도 그 결과를 입법화(立法化)하는데도 솜씨를 보인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남긴 말이 있다. "입법화는 올해 절반, 내년에 남은 절반을 달성한다는 단계를 밟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들(야당) 먹을 빵도 남겨줘야 한다" 트럼프와 관세 성과를 거둬야 교육·금융·공공개혁에 쏟을 힘을 얻는다. 노동 개혁 시늉도 않고 내년 지방선거는 또 어찌 치르겠는가.
외교도 난제(難題)가 겹겹이다. 여러 이설(異說)은 있으나 대통령의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외교에서 성과는 겉으로 나타나고 멍은 안으로 든다.
한국 외교 초창기(草創期) 멤버인 김용식(金溶植) 전 외무장관 말이 생각난다. "강대국은 필요하면 한 입으로 두말한다. 그래도 끄떡없는 나라가 강대국이다" 한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한국의 주권사항'이란 미국 말을 곧이곧대로 믿거나 시진핑 주석의 한국에 대한 우호감을 냈다고 성과를 과시하는 건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도 건널까 말까 한다는 외교의 기본과 거리가 있다. 한국이 어디에 닻을 내린 나라인지 오해를 사선 안 된다. 상대의 '겉말'과 '속마음'을 분별해 뜻을 바로 짚어야 한다. 닻을 단단히 내려야 선택과 재량의 폭(幅)이 넓어진다. 동맹의 역설(逆說)이다.
대일(對日)외교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새로운 총리가 오늘내일 뽑힐 것이다 그들은 최근의 일본 행동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부상(浮上) 앞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나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믿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 여부에 이젠 상징적 의미만 걸려 있을 뿐이다.
일본 정치지도자의 말을 빌리면"미·일 동맹의 약화나 해체는 일본 목숨과 직결된다. 만에 하나 그런 사태가 닥친다면 핵무장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차원을 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여생(餘生)을 미·일 안보강화에 바칠 생각이다" '경제·안보 문제와' '역사문제'를 분리한다 해서 한·일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게 아니다. 먼저 나라를 굳건히 세워야 한다. 그래야 일본이 진짜 달라진다.
안팎 난제(難題)에 비하면 내년 지방선거 물갈이 규모는 문제도 아니다. 대통령 입장에선 퇴임 후에도 자신의 정치철학을 계승하는 세력이 건재(健在)하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5년 단임 대통령에겐 이루기 힘든 희망이다. 이루어진다 해도 달라질 게 별로 없다.
대통령의 한가위 정치학
수년 전 전국 방방곡곡에 걸렸던 '녹색성장' 표어는 눈을 씻어도 찾을 수가 없다. 전임 대통령이 후계 세력을 여기저기 심어놓지 못해서가 아니다. 요란했던 소리만큼 실적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유산 가운데 무엇이 살아남고 무엇이 사라졌나를 보면 자명(自明)하다. 퇴임 대통령을 보호하는 방탄복(防彈服)으로 재임 중에 나라를 굳건히 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한 업적만 한 것이 없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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