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엔 인문학과 고전에 빠져보자
배가 난파돼 5명의 선원이 무인도에 남겨졌다. 식량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죽을 판이다. 4명의 선원이 모의 끝에 다른 한명을 죽이고 인육을 먹으며 살아남았다. 후에 구조된 4명의 선원은 살해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들은 “그 선원의 인육을 먹지 않았다면 5명 모두 죽었을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5명 모두 죽는 것보다는 한명만 죽는 것이 그나마 낫지 않으냐는 논리였다. 게다가 살해당한 선원은 고아였기 때문에 그가 죽더라도 타격을 입을 가족이 없었다.
과연 이 네명의 선원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혹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것일까? 위의 내용은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옳지 않다’고 쉽게 답을 내렸던 학생들은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를 확대하자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명이 죽는 대가로 1000명이 살 수 있었다면? 혹은 1만명이 살 수 있었다면? 그래도 유죄라고 명쾌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제는 아마도 상당수 사람들이 답을 내리는데 망설이게 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단순명쾌하게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이때 길을 잃은 우리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전과 인문학이다. 마이클 샌델의 강의도 결국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와 밀의 ‘질적 공리주의’에서 사고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인문학과 고전이라고 하면 왠지 머리가 아파올 것 같지만 이런 토론을 지켜보며 느끼는 지적 유희는 의외로 쏠쏠한 재미를 준다. 게다가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느껴질 때 고전의 지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근본적인 깨달음은 한없이 가볍게만 느껴지던 우리의 삶에 무언가 모를 중요한 무게를 얹어준다.
어디 그뿐이랴. 이제는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을 공부한다.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스티브 잡스도 아이패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애플이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사실은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합니다.” 결국 최고의 기술은 ‘사람’을 잘 이해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 ‘사람’이 무엇인지는 인문학을 통해서 배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경희대는 ‘후마니타스 칼리지’라는 교양교육 전담 기구를 운영중이다. 경영학 같은 실용학문에 밀려 한동안 찬밥 취급을 받았던 인간, 사회, 자연, 문학, 예술, 역사, 윤리 등의 주제를 다시 대학 중심으로 복원시키겠다는 의도다.
경희대 총장은 “인문학 교육은 ‘좋은 시민’을 길러내는데 필수적인 대학의 책무”라며 “일각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데 보다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이는 결국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인문학을 통해 인간사회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상상력을 기른 인재야말로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눈 깜짝할 새 변화하는 시대 속에 곧 구식이 되어버릴 기술을 배운 사람보다 낫다는 것이다. 경희대는 조만간 대학 교양교육의 주요 내용을 글로벌 스튜디오 네트워크(GSN)를 통해 양질의 콘텐츠로 만들어 일반 사회인들에게도 개방할 계획이다.
이번 가을엔 인문학과 고전에 빠져보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인문학 교양강좌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학술문화진흥재단은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를 개최하고 있으며 각 지역구청에서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들을 수시로 열고 있다.
특히 ‘다중지성의 정원’이나 ‘수유너머’, ‘철학 아카데미’ ‘독서대학 르네21’ 같은 인문·사회 연구공동체들은 소정의 수강료를 받고 양질의 인문학 강좌 및 토론세미나들을 학기제처럼 운영하고 있다.
‘맹자’ 같은 동양 고전부터 니체의 철학까지 혼자서는 읽어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책들을 함께 모여 강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바쁜 생활 속에 시간적 여유가 나지 않는다면 인터넷 강의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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