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난 언제나 연극배우…혼을 바칠 수 있는 건 연극"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11-08 21:18

개관 50여년 삼일로창고극장서 토크콘서트…"청년 연극인, 더 많이 무대 서달라"


주호성 "이순재 이어 최불암 떠나…소극장 매력 사라지지 않도록 대책 필요"


배우 박정자배우 박정자 [삼일로창고극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요즘은 연극 무대, TV, 영화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졌죠. 굉장히 긍정적인 일이지만 언제나 저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연극배우 박정자'라고 합니다."


원로 배우 박정자는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를 펼쳐 왔지만 연극 배우라는 정체성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영화도 좋지만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내 모든 혼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역시 연극"이라며 "무엇이든지 허용되고 어떤 상상이든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연극의 매력으로 꼽았다.


8일 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선 연극계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 박정자와 주호성이 청년 예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창고포럼 라이브 토크'가 열렸다. 박현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 함께했으며 청년 연극인을 포함해 40여명의 관객이 참석했다.


이날 두 배우는 개관한 지 50년을 넘긴 삼일로창고극장에 앉아 극장과 연기 인생에 얽힌 추억, 평생 함께한 연극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박정자는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뒤 '대머리 여가수', '신의 아그네스', '에쿠우스' 등 수없이 많은 연극 작품에 출연했다. 영화 '육체의 약속' 등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자녀목', '말미잘'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분야에 출연하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분"이라며 "카메라 앞은 낯설다. 연극 무대에서만 목숨을 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자는 어린 시절 처음 연극에 매료됐던 때를 회상하며 연극 연기가 왜 특별한지 설명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아홉 살에 극장 '부민관'에서 본 연극 '원술랑'이 떠오르네요. 소방 호스로 뱀을 표현하는 등 부족한 무대였지만 관객은 모든 것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연극 무대라는 공간은 그러한 모든 표현이 용서되고, 일상과 상식을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며 시대를 초월한 연극의 매력을 강조했다.


주호성은 "연기를 할 때마다 '지금 죽으면 내 대표작이 이 작품이 되도록 하자'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밥 먹고 하는 일이 연극이라 그런지 연기하는 시간이 쉬는 시간 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1969년 '분신'으로 연극에 데뷔했으며 '오델로', '레미제라블', '고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했다. '사의 찬미' 등 연극을 연출했고 한국평론가협회 '올해의 최고 예술가상'을 받았다.


배우 주호성배우 주호성 [삼일로창고극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두 배우는 연극계가 어려운 가운데 특히 소극장들이 운영을 이어가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1975년 개관한 삼일로창고극장은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며 50년간 실험 연극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연출가 방태수, 배우 겸 연출가 추송웅 등이 이 극장에 작품을 올렸고 이원경 PD는 극장의 프로듀서 시스템을 처음 도입해 젊은 극작가와 연출가를 양성하고 창작극 발굴에 힘썼다.


삼일로창고극장은 반세기 동안 재정난으로 수 차례 폐관 위기에 처했으나 2012년 서울시가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후 한국연극협회 등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주호성은 "작은 극장에서 숨소리 연기까지 신경 써 가면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라며 "대극장이나 TV 속 연기 관람과는 다른, 소극장만의 독특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자는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관객들이 무대에까지 올라와 좁게 끼어 앉아 공연을 보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불편했지만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려져 더 좋았던 시절"이라고 추억했다.


삼일로창고극장 창고포럼 라이브토크삼일로창고극장 창고포럼 라이브토크 [삼일로창고극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두 배우는 연기를 함께 한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가운데 연극계가 이들의 뜻을 이어받아 더 활성화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전했다.


주호성은 "얼마 전 이순재 선배에 이어 최불암 선배가 떠났다. 최 선배의 '맛있는 연기'와 의리, 정이 자꾸 떠오른다"며 "위축되는 마음도 들지만 (연극계 모두) 원하는 일을 더 힘차게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박정자는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청년 예술인들에게 "삼일로창고극장은 우리들보다는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더 열려 있을 것"이라며 "더 많은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서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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