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대담해진 대외정책…"호르무즈가 최대 지렛대"
새 최고지도자 중심으로 군·정보기관 엘리트 권력 장악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 [EP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미국과 이스라엘의 수개월간 군사 공세에도 이란 체제가 무너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 강경하고 자신감 있게 재편됐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이번 전쟁이 모종의 정권교체를 불렀고 이는 미국 요구를 수용할 실용주의 세력이 힘을 얻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장과 배치된다고 WP는 지적했다.
WP는 안보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을 인용해, 현재 진행 중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은 더 공고해진 강경파 정권의 출범을 알리는 신호탄과 다름 없다고 보도했다.
새 권력의 중심은 하메네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다.
그는 부친이 사망한 공습 당시 부상을 입은 뒤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나, 그를 보좌하는 새로운 지배층은 이전 세대보다 젊고 국가 권력 기관을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들은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켜보며 미국의 약점을 파악했고, 외교와 온라인 프로필 등 소프트파워 활용에도 훨씬 노련한 면모를 보인다.
이란의 초강경파이자 최고 실세로 평가되는 아흐마드 바히디 이란이슬람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이란 연구 책임자인 라즈 짐트는 "이란이 경제 상황이나 산업, 일부 전략적 능력 면에서는 약화했을지 모른다"라면서도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금 더 대담하고 자신감에 찬 새로운 이란을 마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란의 핵심 요직을 차지한 인물들은 과거 국내 반정부 시위 진압을 주도했거나 레바논 내 친이란 민병대인 헤즈볼라 등 대리 세력에 무기를 지원하던 군·정보기관의 핵심 엘리트들이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IRGC 총사령관이 된 아흐마드 바히디는 2022년 여성 인권 시위 당시 유혈 진압을 주도했던 강경파이며, 최고지도자의 새 군사 고문인 모흐센 레자이 역시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공격에는 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온 인물이다.
이란 내 협상파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의장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UPI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반면 민간 정치인들은 권력 중심에서 밀려났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미국과 협상을 담당하면서 이란 외부 세상에 얼굴이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지만, 이번 권력 재편 과정에서 영향력이 크게 약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란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할 온건파로 교체됐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을 무색하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문명을 말살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오히려 이란 내부의 강경파들에게 '미국과의 실존적 생존 투쟁'이라는 명분을 쥐여주며 온건파의 입지를 좁혔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란 정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부상당한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로서의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관리 노먼 룰은 "최고지도자가 부친 장례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이란 국내외에서는 그의 건강 이상이나 권력 약화를 의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이란 외교관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암살 시도를 우려해 모즈타바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틀째 진행되고 있는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장례식 [이란 타스님 통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문가들은 모즈타바가 은신 중에도 핵심 전략 결정을 직접 내리고 있으며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실질적인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WP는 특히 이번 전쟁을 통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가장 강력한 전략적 지렛대로 재발견했다고 평가했다.
새 지도부는 미국의 중동 우방을 겨냥한 보복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운항 차단을 통해 경제적 압박 효과를 극대화했고, 이를 협상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월 휴전이 발표된 이후에도 이란은 필요할 경우 군사력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태도를 유지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으로부터 일부 경제적 양보를 끌어내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서사를 구축했다고 WP는 전했다.
유럽의 한 고위 관리는 "이란 지도부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며 "그들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이 거대한 협상 지렛대라는 사실을 재발견했고, 이제는 자신들이 협상 조건을 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에 참여한 인파 [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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