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 보천보 전투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6-28 22:24


보천보 전투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해금강



북한에서 보천보(普天堡)라는 단어는 특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가령 보천보 전자악단은 ‘휘파람’이라는 히트곡과 전혜영이라는 대중스타를 배출한 가요계의 보물이다. 보천보 혁명박물관은 조선 혁명박물관과 함께 북한의 양대 혁명박물관이며 보천보 전투 기념탑은 높이 49m, 길이 60m로서 대규모 기념조형물이 많은 북한에서도 가장 큰 기념탑이다. 그만큼 ‘보천보 전투’는 북한 김일성 전 주석의 무장항일 투쟁사와 북한 혁명사에서 상징적 사건인 것이다.


보천보는 혜산에서 압록강을 따라 24㎞ 거슬러 올라가는 백두산맥 남서쪽 끝자락. 해방 이전에는 함경남도 갑산군에 속했으나 지금은 그 대부분이 량강도 삼지연군이다. 이곳에서 김 전 주석은 25세때인 1937년, 조국광복회 국내 지하조직의 협조를 받아 6월4일 동북항일연군 제2군 6사의 병력(100명 안팎)을 이끌고 일본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파괴했으며 추격해오던 일본군에게도 큰 피해를 입혔다. 나중에 북한 정권의 핵심인사가 되는 최용건과 님 웨일스의 ‘아리랑’에 나오는 김산 등도 전투에 참가했다.



보천보 사건은 당시 국내신문에 크게 보도됐다. 국민들은 만주의 항일 독립군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고 ‘조선독립’에 고무되기도 했다. 일제는 곧 국경지대 항일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하면서 1930년대 민족해방 운동사상 최대의 검거선풍이 일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물론 진작 남한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심한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것은 물론 공식인정은 금기가 돼 왔다. 지난해 통일부의 북한인물 자료집이 거론, 정부가 최초로 김 전 주석의 무장항일 투쟁경력을 인정했다. 이번에 고교 교과서가 이를 수록한 것은 그런면에서 의미가 있다. 반쪽 역사에 대한 맹목으로는 진정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김 전주석과의 관계는 생략해 여전히 미완의 기록이 됐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등록일자2025-07-05
오픈일자2025-07-05
발행일자2026-06-28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274-3.일심빌딩 302호 031-781-9811.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