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도 외 안내판
진주성 안에 남아 있는 운주헌(運籌軒)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조선 후기 경상우도 병영 체제의 핵심 행정·군사 공간이었다. 이름 그대로 “군막 속에서 계책을 운용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운주헌은 통제사와 병마절도사가 군사 전략을 세우고 군정을 집행하던 집무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경상우도 병영은 원래 창원 합포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왜군의 공격으로 크게 붕괴되었다. 이후 선조 36년(1603), 체찰사 이덕형 등의 건의와 정비 과정을 통해 진주성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진주는 영남 서부 군사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재편된다. 이때부터 진주성은 단순한 지방 읍성이 아니라, 경상우도의 군사·행정 중심지로 기능하게 된다.
경상우도 병영이 진주성에 설치되면서 종2품 무관인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진주목사를 겸임하는 체제가 운영되었다. 초대 겸임자는 이수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체제는 군사권과 행정권을 한 인물에게 집중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군인이 고을 행정을 함께 맡을 경우 지방 통치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인조 18년(1635)에 병마절도사와 목사의 겸직 제도는 폐지되고, 군사와 행정은 분리 운영되게 된다.
이 변화는 조선 지방 통치 구조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병영은 군사 조직으로서 독립성을 유지하되, 지방 행정은 별도의 목사가 담당하게 되면서 권력 집중의 문제를 조정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럼에도 경상우도 병영은 진주성에 계속 존속하며 영남 서부 방어의 중추로 기능했고, 조선 말기까지 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이어갔다.
진주성도
운주헌 외에도 병영 내부에는 군사 회의를 위한 공간인 공진당(供辰堂), 군기와 무기를 보관하던 군기고와 화약고 등이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이는 단순한 관청이 아니라 하나의 군사 도시로서 진주성이 갖는 구조적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1894년 갑오개혁 과정에서 전국의 병영 제도가 폐지되면서 경상우도 병영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후 1896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경상도가 남북으로 분리되면서, 이 지역의 행정 중심은 관찰사 집무처였던 선화당으로 이동하고, 경상남도 관청 기능으로 재편된다.
오늘날 운주헌과 진주성의 여러 유구들은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조선 후기 국가 운영 체계와 군사 질서, 그리고 지역 권력 구조의 변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물이다. 돌과 터만 남아 있어도, 그 자리는 여전히 “계책을 세우던 공간”으로서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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