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칼럼] 살릴 수 있었던 시간, 끝내 닿지 못한 생명 -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5-07 10:55

이미지 캡션= ai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그 하루는 끝내 닿지 못하는 시간이 된다. 2026년 5월 2일, 충북 청주의 한 산모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멈추었다. 태아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진 그 순간부터 시작된 시간은, 치료를 향해 흐르지 못하고 거절 속에서 소모되었다.


병원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국의 병원들이 문을 닫았다. 숫자로는 충분해 보였던 의료 체계는 실제 상황 앞에서 무력했다. 생명을 살리는 시스템은 있었지만,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었다.


결국 산모는 헬기에 실려 부산의 동아대학교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길은 치료로 이어지는 희망의 통로가 아니라, 이미 늦어버린 시간을 확인하는 여정이 되고 말았다. 응급의료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연결의 문제임을 이 사건은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늘 생명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지탱해야 할 구조에는 충분한 책임을 두지 않았다. 필수 의료는 점점 약해졌고, 위험하고 힘든 분야는 외면되었다. 의료진의 헌신에 기대어 버티는 동안, 시스템은 조금씩 비어갔다.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이 비극은 단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배분의 문제이며, 우선순위의 문제다.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책임지는 의료는 수익성이 낮고, 책임은 크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누구도 나서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공백은 결국 가장 위급한 순간, 가장 약한 존재에게 전가된다.


응급의료 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119가 전국의 병원을 일일이 수소문해야 하는 현실은 이미 시스템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응급 상황에서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그때그때 묻는 사회는, 준비된 사회가 아니다. 생명은 선택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에도,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선택되고 밀려난다.


지역 간 의료 격차도 이 사건의 또 다른 얼굴이다. 수도권과 지방, 대형 병원과 중소 병원 사이의 간극은 이미 오래전부터 벌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차이를 체감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번 사건은 그 간극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 드러낸다. 생명이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생존 가능성이 달라지는 사회라면, 그것은 이미 공공성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결국 이 사건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우선해 왔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비용과 효율을 앞세운 선택들 속에서, 생명을 지키는 일은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결과는,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한 생명으로 돌아왔다.


살릴 수 있었던 시간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이어지지 못했다. 병원과 병원 사이, 지역과 지역 사이, 책임과 책임 사이의 틈에서 시간은 흩어졌고, 결국 생명도 그 틈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효율과 비용을 앞세운 구조를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생명을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다시 설계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필수 의료는 선택이 아니라 기반이며, 응급의료는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


살릴 수 있었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같은 질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다음의 시간마저 놓칠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연결을 회복할 것인가. 남은 것은 하나의 물음이다. 우리는 과연 생명을 어떤 자리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시와 늪 대표 배성근

(시인·수필가·소설가·평론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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