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스승

‘무지한 스승’은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책 제목이다. <무지한 스승>은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대한 낯설고도 신선한 통찰을 준다. 랑시에르는 교육의 목적이 인간의 해방과 평등에 있다는 사실을 확고히 쥐고, 진정 바람직한 스승은 학생이 스스로 배우게 하는 사람이라 역설한다. 따라서 ‘스승의 무지’란 지배적인 교육체계나 방법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나 무관심을 뜻한다. 심지어 스승은 지식을 갖지 않은 자일 수도 있다. 이런 교육적 이상은 견결하고 자체로 해방적이다. 지배적인 교육이 언제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등급·등수를 매겨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데 아마 많은 사람들도 그러셨겠지만 ‘무지한’이란 수식어가 ‘스승’ 앞에 붙은 것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늘 무의식 중에 ‘스승=전지자’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동양적인 개념인 ‘스승’에는 기대와 존경이 이미 내포돼 있다.
그러나 ‘스승 되기’는 참 어렵다. 대학 선생의 경우에도, 연구자로서 모범이 되어 늘 학문 동향에 대해 민감하고 학적으로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교육자로서의 직업윤리는 물론 인간으로서도 품격과 도덕성을 요청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덕목을 다 갖춘 선생이란 정말 얼마 되지 않을 것이거니와, 한 선생의 인생에서도 수십년 그런 모습을 일관되게 지켜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다. 한때 촉망받은 젊고 양심적인 학자가 세월에 늙고 쪼그라들고, 또 어떤 경우엔 풍진에 타락하여 ‘갑질 교수’나 괴물처럼도 되는 것이겠다.
반면 ‘제자’는 언제나 스승보다 젊고 예민한 존재의 이름이다. 제자는 선생의 평가를 받으며 인정을 갈구하지만, 사실 제자들이 언제나 선생을 평가하고 있다. 그 평가 기준은 선생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새롭고 패기만만하며 엄격하다. 그것은 제자 쪽에서는 권리요, 당연한 일이지만 선생이란 인간도 필연적으로 늙어 퇴락한다. 선생은 사제도 수도승도 아닌 속인일 뿐이다. 그러니 그런 평가와 기준을 수십년 버텨내고 존경받는 노스승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일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을 젊을 때는 알 수가 없다. 나도 전에는 언제나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렇듯, 현장에서 겪은 많은 시행착오와 나름의 반성을 통해서 인생의 후배들에게 노력하며 버티어 온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학생시절의 경험과 기억이기도 했다. 어떤 가르침은 좋았고 어떤 교육은 좋지 않았던 기억은 아직 생생한 자료이며 생활의 기준이다. 어떤 선생님들은 말 그대로 사표(師表)였고 또 어떤 이들은 떠올리기도 싫은 ‘반면교사’였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스승·선생이라 하면 곧 제도교육의 현장에서 만났던 교사·교수들을 떠올릴 것이다. 아마도 그들 중에는 ‘스승’은커녕 오히려 상처를 주거나 배움의 기쁨과 학교생활의 의미를 망쳐버린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고 가르치는 숭고한 일은 학교 바깥에서 그리고 삶 전체에서 계속 ‘수행’된다. 인간은 모두가 어떤 선생의 학생이었으며 또 스승일 수 있다.
해방적이고 인간적인 교육은 언제나 교육의 대원칙이겠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무색하다. 교육현실은 여전히 너무 피폐하다. 입시 경쟁체제와 극도로 양극화된 교육환경, 고등교육 정책의 실종 상태는 고쳐질 줄 모른다. 그래서 ‘선생 됨’도 더 어렵다. 좋은 선생이기 어려운 것은 학교와 제도의 모순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많은 평범한 선생들은 ‘무지한’ 진정한 스승은커녕, 학생들을 학벌과 경쟁에 줄 세워 바보 만드는 체계 속의 무기력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대학의 선생들에게도 더 어려운 시절이다. 지난 10여년간 학부는 졸업장과 학점 시장으로 변했고, 학술 생태계가 붕괴되어 학문의 어려운 길에 들어선 대학원 학생들에게는 면목이 없다. 강사법을 빌미로 한 구조조정에서 보듯 아예 제자가 없거나 가르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어, 대학의 선생들은 점점 더 긍지도 자존감도 없어져 쓸쓸하다.
어떻게 고쳐 평등과 해방을 위한 교육을 이룰 것인가? 오늘은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 현장의 당사자들과 정부가 함께 절실하고도 단호하게 교육개혁을 위해 나서야 한다. 계엄 이후의 지금이 교육개혁과 공공성 제고의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둘째, 시민들께서 자식과 스스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라도 대학 문제와 평생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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