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시민의 삶

새해와 더불어 이제 나는 60대 인생 후반의 삶을 살게 되었다. 10년 전 50대를 어떻게 살까에 대해 생각하면서, ‘모르면, 아는 척하지 말고 모른다고 말하기’를 실천하자고 결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 무렵 누군가에게 들었던 한 이야기 덕분이었다. 정치학자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하다 보니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화제로 떠올랐단다. 모두가 경쟁적으로 관련 내용을 말하는데, 한 사람만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왜 말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고 답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그는 약간 당황하면서, “대학원 수업에서 읽은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을 나 스스로 검토할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고 덧붙였고, 그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단다. 이 이야기에 나 역시 큰 인상을 받았고, 제대로 아는 게 아니면 모른다고 해야 할 때가 있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다. 그 뒤부터는 뭔가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노심초사했던 나쁜 강박관념에서 나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60대의 삶을 살면서 나이 든다는 문제를 자주 의식하게 된다. ‘5060세대’라고 하는, 우리사회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인구집단에 속하게 되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5060세대라는 말이 ‘보수를 지지하는, 나이 든 세대의, 보수적 시민’을 상징하는 정치언어로 사용되는 것 자체가 옳지도 또 현명하지도 않은 일로 여기기에, 그로 인해 영향받는 것은 없다. 그보다는 우리 윗세대 어른들 가운데 지나친 완고함과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인 경우가 많았다는 나의 경험에서 오는, 작은 불안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이 들어가는 나는 과연 다를까. 요즘 젊은 애들은 어떻다는 등의 세태 논평이나 개탄조 언어를 쓰지 않아야 할 텐데, 훈계조 말을 늘어놓기보다는 더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젊게 산다거나 다른 노인네들과 다르다는 평가를 얻고자 부자연스럽게 노력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던데, 나는 어떻게 될까.
좀 지난 일이지만, ‘노인의 글쓰기’라는 주제로 영문학자인 김우창 교수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함께 강연을 한 적이 있다. 한 문화재단이 주최한 자리였는데, 그때 김우창 교수는 ‘스스로를 돌보는 삶’을 강조하고 지나치게 외향적인 삶을 경계하려 한다고 말했다. 반면 오에 겐자부로는 반핵 운동을 하고 장편소설을 쓰겠다며 노인이 곧 ‘등 굽은 소나무’ 같은 삶으로 동일시되는 것에 저항하겠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급진적이 된다는 오에 겐자부로의 주장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오랫동안 그 비슷한 생각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 뒤 내가 사회운동가를 위한 민주주의론보다는 평범한 보통 시민들을 위한 민주주의론의 가치를 점점 더 중시하게 되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생각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평균적 시민이 실천하기 어려운 삶이자 오에 겐자부로 같은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는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뒤에는 노인, 즉 나이 든 시민의 삶에 대한 고민을 더는 하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적극적 실천가의 삶과 관조적 철학자의 삶 혹은 그 사이에서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
어느 날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말하며 “나도 나이 들고 있는 건가, 아니면 보수적이 되는 건가”라고 물으니 “나이 먹는 건 확실하고, 그만큼 현실적이 되는 거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악마는 노인이다”라고 말했는데, 혹 우리 안에서도 작은 악마들의 발언권이 점점 높아지는 것일까. 늙는다는 것은 뭘까. 그때 한 친구가 말했다.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나이 든 사람들의 생각 사이의 차이를 우리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과장한 것일 수 있어. 그보다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생각 차이가 더 크고, 나이 든 사람들 안에서의 의견 차이도 작지가 않아.” 옳은 말로 들렸다. 나이 듦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가 많아지는 것도 잘못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나이 든 시민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 같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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