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복지

요즈음 한국에서도 복지국가라는 단어가 어느 정도 친숙해졌다. 지난 대선에서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만들어 낸 부산물이다. 그런데 복지국가라는 용어의 기원이 전쟁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복지국가라는 용어는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었던 1941년 영국 성공회 대주교 윌리엄 템플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템플 대주교는 전쟁으로 국민을 내모는 파시스트 독일을 호전적인 전쟁국가(the warfare state)로 규정하고, 영국은 대조적으로 국민을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생활의 안정을 보장하는 복지국가(the welfare state)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복지국가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히틀러의 독일은 독일 국민을 전쟁으로 내몰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독일에 대항하여 전쟁터로 나가는 청년들에게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켜야 하는 확실한 신념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했다. 무조건 애국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젊은이들에게 영국은 가족과 친지들의 생명과 삶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좋은 나라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자 했다. 국방의 힘은 복지에서 나온다고 본 것이다. 또한 영국이 독일의 공격과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실업, 빈곤, 질병 등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협과 위험으로부터도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현대적인 복지국가의 이념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보고서인 비버리지 보고서도 독일과의 전쟁이 한창이었던 1942년에 나왔다. 그야말로 육지, 바다와 하늘에서 치열한 격전이 이어지고 독일의 막강한 군사력에 의해서 영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여 있었던 긴박한 시기 국민의 생활에 대한 조사와 복지정책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전쟁국가와 대비되는 복지국가는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전하였다. 유럽은 19세기 동안 매년 2차례 이상의 대규모 국가 간 전쟁을 치른 야만의 대륙이었다. 두 차례 세계 대전은 그러한 국가 간 대립의 절정을 이루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끝으로 엄청난 살상과 파괴를 경험한 유럽이 20세기 중반 이후 평화와 복지의 지역으로 바뀐 것이다. 더 나아가 군사적 대립과 전쟁을 포기하고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만들어 외부의 위협을 더욱 줄이고, 실업, 질병, 빈곤과 같은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복지국가를 만들었다.
전쟁국가와 대비되는 복지국가라는 용어의 기원과 복지국가의 발달은 동아시아의 현실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성장하여 점차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사회들은 모두 불평등과 빈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일본, 한국, 중국과 대만은 공통적으로 경제는 성장하지만, 불평등이 심해지고, 빈곤층이 늘어나는 성장의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성장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불평등과 빈곤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국민의 생활안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복지국가로 나아가기보다는 전쟁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군비증강에 몰두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복지국가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와 정책이 국민의 요구나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을 장악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기 때문에 실업, 질병, 빈곤, 장애, 고령화 등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일반 국민들의 관심은 정치의 장에서 배제되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 결핍으로 인하여 정치가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복지국가 그리고 평화는 모두 연관되어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해야만 복지국가도 가능하고 또 동아시아 국가 간 평화체제 구축도 가능할 것이다. 유럽처럼 동아시아에서도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접고 평화와 복지의 시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각국 국민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복지국가가 전쟁국가와 대비되는 용어로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21세기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지역 내 국가 간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지 않고, 각국에서 복지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치발전의 중요성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만, 복지국가도 지역의 평화도 가능해진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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