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도 연애도 출판도 노동문제다

누구나 말하듯, 노동은 인간 공동체의 기초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땀 흘려 일하고 협동하는 것의 보람이나 가치가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다면 어느 인간 공동체도 행복할 수 없다. 북유럽에 살아본 경험이 있는 한 지인으로부터 그곳에서는 청소년기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 취직할 때 불이익을 당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하는 것의 가치를 모른 채 성장했다면 회사 생활도 잘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라는데, 참으로 일리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중학생 나이만 되어도 몸은 다 자라 있는 아이들에게 땀 흘려 함께 일하며 협동하는 노동의 가치는 가르치지 못하고 누가 더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가를 경쟁하게 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부키, 2011)의 저자인 토머스 게이건에 따르면, 노동의 가치가 중시되는지 여부는 사랑의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졸자의 90% 이상이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서 직업을 찾아야 하고 실직은 곧 무보험자 및 모기지론 미납자로 전락할 위험이 큰 미국의 젊은이들이 연애 상대의 스펙에 신경을 더 쓰는 반면, 어려서부터 노동의 가치와 직업 교육에 익숙하고 성장한 뒤에도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는 유럽의 젊은이들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유럽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자의 순위에서도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가보다는 키스 잘하고, 유머 있고, 요리 잘하는 남자가 더 높게 평가된다고도 한다.
게이건은 유럽에 비해 미국의 노동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강조했지만,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는 미국보다 한국의 노동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적어도 미국의 노동자들은 우리보다 결사의 자유를 훨씬 더 충분히 누리고 있다. 미국 민주당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무시하고는 아예 정치를 할 수가 없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서로를 “미국 노동자를 위한 투사(champion for working American)”라고 치켜세우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되는데, 그렇기에 200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미국 경제의 튼튼함을 억만장자의 숫자나 포천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의 이윤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도전정신을 발휘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경제, 손님의 팁에 의존해 살아가는 식당 여종업원이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면서 실직의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경제를 튼튼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노동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경제를 강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가? 노동문제를 말하면 뭔가 좌파적이고 운동권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2002년의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독재정권이 노동자의 기본권을 탄압하던 시절에 저는 노동자의 편에서 현장을 뛰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와 더불어 노동자의 권익이 신장된 후에는 노사화합의 중재자로 현장을 뛰었습니다. 기업이 존망의 기로에 서 있을 때에는 노동자들한테 계란세례를 받으면서까지 기업을 살리자고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집권한 뒤에는 어땠을까? 재벌에 대해서는 관대했고 노동에 대해서는 가혹했다.
게이건도 강조했듯이, 어느 사회든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노동이고 그 핵심은 노동시간에 있다. 노동시간이 짧을수록 노동의 가치가 더 튼튼하다. 그런 사회일수록 더 건강하다. 일에 대한 헌신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높다. 책이 많이 읽히는 나라도, 종이신문의 발행부수가 많은 나라도 이런 사회다. 많은 사람들이 출판계의 오랜 불황을 염려하는데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장시간 저임금 노동체제를 개선하는 것이 최고의 출판진흥책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진보든 보수든 누가 더 노동문제 개선에 유능한지를 두고 경쟁해야 한국 민주주의가 좋아진다고 본다. 그래야 인간다운 교육도 가능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소상공인도 산다. 노동문제, 진짜로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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