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가의 점, 그 파괴적 혁신

얼마 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전에 다녀왔다. 미술 평론가들이 으뜸으로 꼽는 한국 근현대 대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김환기의 예술혼과 삶을 오롯이 느꼈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김환기는 신안의 작은 섬 안좌도 고향의 달빛을 좋아하고, 한국적인 정서를 사랑했다. 달항아리의 미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집 마당에 뜬 달과 달항아리를 그렸다. 1963년 10월 어느 날 중견 대학교수이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으로서의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지천명에 새로운 미술의 중심지이자 아무 연고도 없는 뉴욕으로 떠났다. 도쿄에서 미술 공부를 했고, 40대에 유학했던 파리에서 격찬을 받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최고의 명예를 누렸지만 뉴욕에선 그저 '코리아에서 온 무명의 작가'였을 뿐이었다.
뉴욕에서의 김환기는 기존 화풍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과 기법에 대한 집념, 도전정신으로 자연에서 우주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관한 한 타협을 거부하고, 혁신적 사고와 의지를 새로운 기법으로 담아내었다. 마침내 구상의 모든 형태를 파괴하고 점과 선의 순수한 조형 요소로 채워나갔다. 푸른색의 전면점화. 그가 도달한 세계는 친한 친구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모티브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완성했다 한다.
나이 예순에 가까울 무렵 탄생한 그 작품을 직접 감상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작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치열하게 살았던 예술가와 과학자들의 삶이 그렇지 않았을까?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세계의 위대한 걸작은 수많은 고뇌와 실패라는 아픔 위에 쌓아올린 창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과학적 업적도 다르지 않다. 숱한 노력들이 모이고, 확장되고, 부서지고 다시 창조되는 과정을 거쳐 신세계로의 안내자가 된다. 파괴적 혁신의 과정이 작은 결정을 이루어 점이 되고, 선을 긋고, 면을 형성한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과 노력의 축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창조물을 탄생시켰다.
인류에게 생명과 건강을 선물한 10대 의약 발명품에는 백신, 항생제, 마취제 등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정점을 지나고 보니 '백신 없는 세상'의 지옥도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신약의 연구개발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실패의 성 위에 쌓고 또 쌓아가는 극한의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깨트린, 모든 혁신은 숙명과도 같은 도전정신의 집요한 산물이다. 오늘 이 순간에도 묵묵히 현장에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경의로, 그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게 한 귀한 존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김환기의 점을 다시 떠올려본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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