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지혜

언어학에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이란 개념이 있다. '언어(言語)'로 해석되는 랑그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이다. 이렇게 저렇게 말하자고 약속한 것이다. 파롤은 실제 사용되는 '말(言)'이다. 어떤 말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개개인이 판단하고 선택한다. 랑그는 유한하지만 파롤은 무한하다. 랑그는 누구나 공유하는 내용이다. 그것에서 자기만의 파롤을 만들어내야 한다. 파롤은 개개인의 숙고와 내공에서 창조되는 차별화된 말이다. 이러한 말이 체계적 틀을 갖추면 글이 되고,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도 된다. 말하고 글 쓰는 사람의 독창성이 중요한 지점이다.
말은 타인과 다른 자기류(自己流)를 갖추어야 한다. 자기류를 갖추려면 품위와 격조가 필요하다. 그러한 요건이 갖춰져야 말에 지혜가 담기고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는 흔히 지식과 지혜를 구분한다. 지식은 통상 지성의 관할 영역으로 품위와 격조 없이도 전달되지만 지혜는 그렇지 않다. 지혜는 이성과 영성이 관장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자신의 소명과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세 가지 길을 통해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 사색과 모방과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경험은 기록·전달되어 모방의 대상이나 사색의 근거가 된다. 세 가지 길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또한 말은 절제되어야 한다. 숙고와 사색 끝에 나오는 말은 번잡스럽지 않고 과장이 없다. 숙고와 사색은 시간을 요한다. 좋은 말을 하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다림의 미학 속에 지성과 영성이 여문다. 기다림을 잃어버린 성급함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타인과 사회현상을 속단하는 일 역시 현대인이 저지르는 대표적 실책이다. 성급한 말과 판단을 보류하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축적이 이뤄지고 축적되어야 성과가 나온다. 매사에 덤비고 단기에 성과를 내고자 하는 태도는 졸속으로 이어지고 결국 자신과 공동체에 해악을 남기기 마련이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선현의 경구는 이런 점을 가르친 것이다. 시인 윤동주는 '쉽게 쓰여진 시'라는 시에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썼다. 인간 사회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투자와 축적 없이, 숙고와 사색 없이 이뤄진 일은 사상누각일 가능성이 크다.
말은 또한 사회적 관계를 전제한다. 독백이라는 형식도 있지만 예외적 형태이고, 말은 단수이든 복수이든 상대를 전제하는 체제이다. 사색과 숙고에 더해 경청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말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어서 배려와 겸양을 수반해야 한다. 명심보감은 일찍이 '더불어 말할 것을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失人), 더불어 말하면 안되는 걸 말하면 실언(失言)이 되니, 지혜로운 이는 사람도 잃지 않고 또한 실언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말의 사회성을 지적한 것이다. 모든 관계는 말에서 시작하여 말로 끝난다. 말이 정확하고 품위가 있어야 좋은 사회적 관계가 이루어지고, 절제하고 기다리며 경청하는 태도에서 지혜로운 말이 나온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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