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白雪)에 관한 생각들

우리의 옛 선현들은 눈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첫째가 위중(爲重)이라 하여, 눈은 사람들을 신중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눈이 쌓이면 바깥 출입이 어려워져 집에 머물게 되면서 명상을 하는 등 행동거지가 신중해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위의(爲誼)라 하여, 눈은 사람들 사이에 인정을 더 두텁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눈이 쌓여 바깥 출입이 뜸해져 만남이 줄어들어서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위범(爲凡)이라 하여, 눈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범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눈이 쌓이면 세상 더러운 것, 사소한 것들을 모두 묻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가 위축(爲蓄)이라 하여, 눈은 사람들로 하여금 물자를 아끼고 비축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통행이나 물자의 유통이 어려워지는 것을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다섯 번째는 위연(爲娟)이라 하여, 눈은 여인들을 더욱 예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옛날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릅니다만, 그래도 여인들이 예뻐지는 위연(爲娟)만은 지금도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모저모 뜯어 분석해 풀어놓은 선현들의 지혜가 놀랍고 그 재치가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눈에서조차 가르침을 얻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멋쩍은 노릇입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은 다 접어두고 그저 김진섭(金晉燮) 선생의 수필 백설부(白雪賦)에서처럼 '겨울날의 한가운데, 대체 어디서부터 이 한없이 부드럽고 깨끗한 영혼은 아무 소리도 없이 한들한들 춤추며 내려오는 것인지' 찬탄하면 족할 일입니다. 더하여 '우리는 어찌된 연유인지 부지중(不知中) 온화하게 된 마음과 인간다운 색채를 띤 눈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경쾌한 목례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지'를 확인할 일입니다. 그리고 눈으로 인하여 무기력과 우울함을 덜어내게 된다면 더욱 좋을 일입니다.
당(唐)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시 강설(江雪) '온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세상 모든 길에도 사람 자취도 없네, 외로운 배 위에 삿갓 쓴 늙은 노인, 홀로 낚시 드리운 차가운 강에 눈이 내리네(千山鳥飛絶 萬逕人滅 孤舟笠翁 獨舟寒江雪)'를 읽으면 세상 잡스러운 것은 다 물러가고 마음은 정밀(靜謐) 속으로 빠져듭니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 속의 주인공이 되고도 싶지만, 번잡한 도회에서는 그저 상상만으로 만족할밖에요.
우리 김광균(金光均) 시인의 시 설야(雪夜)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서글픈 옛 자취인양 흰 눈이 내려~나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의 놀라운 감수성에 경탄하며 어릴 적 눈 내리는 겨울밤의 고향집을 생각합니다.
을사년 한 해의 달력이 간당간당 합니다. 올 한 해는 우리 사회의 온갖 추(醜)한 모습들이 드러난 해였습니다. 새해는 그 추함을 다 씻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순결한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가오는 병오년 한 해도 우리 앞에 많은 난제들이 가로놓여 결코 만만치 않은 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흰 눈이라도 소복이 내려 잠시라도 세상 모든 것과 단절하여 시름을 잊고자 눈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만나면 근거가 있기도, 없기도 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우리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스럽게 느껴지고 마음은 허허롭습니다. 다가오는 병오년에는 그런 이야기들은 접을 때입니다. 세상 잡스러운 것들을 흰 눈이 묻어버리듯이. 그래서 눈을 기다립니다. 흰 눈이 내려 쌓이면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힘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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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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