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책임 윤리

동양철학은 세계의 생성과 운영을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하지 않고 복합적인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철학은 유일신, 이데아, 절대 이성보다 자연, 기, 연기 등으로 자연과 사회 현상을 해명하려고 했다. 그 결과 동양철학에서는 남성과 여성, 음과 양, 동(움직임)과 정(고요함), 윤리와 이익, 빈과 부처럼 다양한 짝 개념을 만들어냈다. 짝 개념은 사이가 좋은 경우도 있고 으르렁거리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싸우다가 화해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도 나날이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을 걱정하지만 정작 그것을 풀 해법을 잘 찾지 못하고 있다. 워낙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맞서다 보니 모두를 만족시키는 혜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골이 점차 깊어져서 사회 현안이 될 정도였다. ‘논어’에서는 이 문제를 빈부(貧富)와 의리(義利)로 풀려고 했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신분사회였다. 높은 신분에 있으면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제후국이 서로 경쟁하면서 계급과 계층 사이의 이동이 일어나게 됐다. 이 상황은 춘추시대의 어떤 사람에게는 위기이기도,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이기도 했다.
예컨대 국가가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영토를 잃거나 심지어 멸망하게 되면 왕족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돼 거지와 다를 바가 없다. 전쟁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군사, 행정,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실무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지배층의 최하층에 있던 선비와 제품 생산에 종사하던 평민이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이런 점에서 춘추시대는 신분사회였지만 ‘귀속 지위(선천적으로 타고난 지위)’와 ‘성취 지위(후천적으로 획득한 지위)’가 공존하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은 개인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 세대로부터 결정된 신분을 그대로 물려받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개인 능력을 발휘해서 부모 세대와 다른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회 변화가 커지면 안정성이 줄어들게 된다. 신분이 높아도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람이 나오고, 반대로 신분이 낮아도 벼락출세를 하거나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나왔다.
이처럼 춘추전국시대 사람들이 보이는 성공과 실패, 영광과 좌절, 영예와 추락을 사마천은 ‘사기’의 ‘열전’에서 흥미진진하게 담아냈다.
사회 변동에 따라 빈부 갈등이 심해지자 공자의 학교에서도 이를 위한 해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은 당시 국제무역을 통해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는 오늘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유상(儒商, 자애로운 상인)의 대표 인물로 각광받고 있다. 평소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빈부 문제를 고민하고서 공자와 대화를 나눴다.
자공의 생각은 이랬다.
“가난하더라도 있는 자에게 알랑거리지 않고, 재산이 많더라도 없는 자에게 뽐내거나 시건방을 떨지 않으면 빈부 갈등이 악화되지 않을 것이다(貧而無諂, 富而無驕).”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것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빈부 격차로 인한 갈등이 덜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빈부 격차는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남게 된다.
공자는 자공의 해답을 들은 뒤에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가난하더라도 올바른 길을 즐거워하고, 재산이 많더라도 문화 예술을 좋아한다면 빈부 격차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貧而樂道, 富而好禮).”
공자와 자공의 차이는 적극성과 소극성에 있다. 자공은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에 소극적이다. 반면 공자는 빈부가 중요하더라도 사람이 빈부만이 아니라 다른 인문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랐다.
얼핏 보면 빈부 격차에 대해 자공은 개인 책임으로 떠넘기고 공자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자공과 공자는 문제의 발생 원인을 따지지도 않고 빈부 격차를 해결하는 실천적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해답을 비현실적인 희망사항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경제적 성공을 꿈꾼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성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만약 모든 사람이 성공한다면 그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아울러 사람이 삶에서 경제적 성공 이외에 다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만을 유일한 가치로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가 인정된다면 그만큼 삶이 다채로워질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공자는 빈부의 문제를 그 자체에만 주목하지 않고 보다 넓은 틀에서 생각해보길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맹자’의 제일 첫 편에서 도의와 이익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관계로 그려진다. 때문에 유학은 이익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사마천이 ‘화식열전’에서 “부(富)란 사람의 본성으로, 배우지 않아도 모두 가지려고 한다(富者, 人之情性, 所不學而俱欲者也)”라고 한 말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공자도 사람이 도덕이나 사회적 가치를 위반하지 않는다면 부를 추구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일찍부터 가계를 돌봐야 했던 경험도 공자가 경제 행위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근대 일본에서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년)는 메이지유신 이후 급성장한 실업계가 탐욕과 부정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찍부터 관심을 뒀다. 그는 ‘실업 윤리 확립’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공자가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이 생기면 올바른지 따져봄)를 주장한 말에 주목했다. 그는 ‘논어와 주판’에서 이를 의리합일(義利合一, 윤리와 이익은 일치돼야 함)로 제시한 바 있다.
시부사와의 주장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공자를 중의경리(重義輕利), 즉 도의를 중시하고 이익을 경시하는 인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시부사와는 전근대에는 상업과 실업이 전통, 종교, 문화 등의 제약을 받았지만 근대에는 그런 제약이 없어진 만큼 도덕과 윤리라는 새로운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공자의 주장은 의리합일보다는 의리상고(義利相顧, 윤리와 이익이 서로 돌아보며 견제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의’와 ‘리’가 합일하려면 윤리와 이익이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서로 합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즉 이혼을 전제로 한 결혼일 뿐이다. 수레는 좌우의 바퀴를 달고서 길에 설 수 있고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바퀴 하나가 빠지면 수레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처럼 윤리와 이익도 상대를 철저히 배제하고 독주할 수는 없다. 둘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서로를 돌아보며 나아갈 때 튼튼하게 더 오래갈 수 있다. 즉 의리상고해야 하는 것이다.
근대사회는 신의 은총을 더 크게 한다는 조건으로 사익 추구라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긍정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볼 수 있듯 자본가는 이익을 위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사람으로 그려질 정도로 사회적 금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반기업 정서’가 극심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성공한 기업가를 셰익스피어가 그렸던 것처럼 차가운 사람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따뜻한 사람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따뜻한 기업가가 되려면 의리상고의 가치를 되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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