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저질화 넘어 소멸시키는 법사위

요즘만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주목받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법사위는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임위 중 하나다. 본회의에 오르기 전 모든 법안의 문지기 역할을 하며, 특정 법안이 기존 법체계와 충돌하거나 자구상 문제가 없는지를 검토하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막중한 역할 때문에, 노무현 정부 시기이던 2004년 제17대 국회부터는 국회의장은 원내 제1당이, 법사위원장은 원내 제2당이 맡는 관행이 시작됐다. 국회 내부에서도 상호 견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6년간 유지돼 온 이 관행은 제21대 국회부터 깨지기 시작해 지금도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직을 독점하고 있다.
독점도 그렇지만, 상임위가 위원장의 독단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예를 들어, 여당과 위원장이 야당의 간사마저 누구는 안 된다고 나서는 바람에 제1야당 간사가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는 상당한 문제를 야기한다. 국회법 제49조 2항은 ‘위원장은 위원회의 의사일정과 개회 일시를 간사와 협의하여 정한다’라고 명시하고 있고, 국회법 제50조는 각 상임위원회에 교섭단체별로 간사 1명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법안을 심의하는 법사위가 정작 국회법은 준수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법사위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법원장 청문회’를 강행했다. 증인은 한 명도 출석하지 않았고, 여당 위원들은 새로운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청문회를 강행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제는 국정감사 현장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끝까지 출석시키려는 모양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은 법리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의 판결 의도가 있든 없든 이는 ‘정치적 해석’의 영역이다. 반면, 파기환송이라는 행위 자체는 법률적 판단의 영역이다.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을 계속 추궁하더라도, 그는 재판 관련 사항임을 이유로 답변을 회피할 게 분명하다. 여당 위원들이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국감을 강행하는 것을 보면 조 대법원장에게 의혹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사법부 수장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국민이 과연 정당하다고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 상정 이후 수정·재수정되는 사례가 발생했는데, 이 과정을 법사위가 잘 몰랐다는 점이다. 증언·감정법 개정에서 위증한 증인에 대한 고발 주체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으로 오락가락했다. 그런데 추미애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법사위원들은 애초 원래 상정한 법안이 왜 수정됐는지 몰랐다고 해명한다. 진영 싸움은 잘하는데, 정작 법안의 수정 과정은 잘 몰랐던 모양이다.
현재 법사위는 국회에서 가장 첨예하게 진영 대립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법사위가 운영된다면, 법사위는 정치를 소멸시키는 데 기여한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정치가 사라진 국회에서 의원은, 단지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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