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돌아오고 있다
예로부터 적어도 100여년 전까지는 동서를 막론하고 인문적 소양이야말로(그것이 딱히 ‘인문학’이라는 명칭으로는 안 불려졌을지라도) 한 개인이 사회의 최상부층에 진출하여 그 사회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그 체제를 유지하며 사회적 유대와 통합을 책임지는 공사의 조직에서 활동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소양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우 문사철(文史哲)의 소양과 이상이 그것이었고, 서양의 경우 고대 그리스 이래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문교육 및 지식은 현세적 국가경영 및 사회생활의 유용한 도구 및 기준이었다.
다원화시대 인문소양 필수-
이렇게 볼 때 ‘인문학의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용성의 위기라 단언해 볼 수 있다. 전통시대에 있어 한 사회의 도덕적 이상과 실천적 기능이라는 두 측면에서 모두, 가치 차원의 유용성과 도구적 유용성을 인문 소양 또는 인문 교육 그리고 인문학이 담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 과학적 합리성으로 사회가 급격히 재조직되는 가운데 1차적으로 인문학의 도구적 유용성(다시 말해 실용성)이 빛을 바래게 되었고, 급기야는 사회 경영의 기본 원리로서의 도덕적 가치를 창출하고 통제하던 인문학은 그 가치 차원의 유용성마저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인문학의 가치가 돌아오려면 그 유용성이 돌아와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전통시대에는 인문학 및 인문 소양은 그 가치적 유용성과 현실적 실용성을 동시에 담보하고 있었는데, 20세기 들어와서 양자 모두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시대의 초입에서 전망하는 바는 그 가치적 유용성에서도 인문학의 생명력은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고, 그 현실적 실용성에 있어서도 인문 소양은 이 다원화의 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현대인의 필수 불가결한 자산이라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현실적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최근 들어 미국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신입사원으로서 인문분야의 전공자들을 누구보다 선호한다는 것이다. (물론 잘 교육되었다는 전제는 있다) 정보화 시대의 기업이 이른바 하이테크 관련 전공자를 왜 더 선호하지 않는가 의아해지지만, 일반 신입사원들이 하이테크에 노출되어 있어 봤자 짧게는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기술 혁신과 급변하는 기업 환경 아래서 이내 아무 쓸모 없어지고 결국 기업의 비용으로 끊임없이 재교육시켜야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급변하는 기업 상황 속에서 인재를 재배치하고 재교육해야만 하는데, 여기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잘 적응하여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인재는 단연 인문계 졸업자라는 사실을 미국기업들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ㅡ기업들도 ‘실용적 인재’ 요구-
한국 기업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언젠가 어느 기업 총수가 “대학이 불량품만 생산하여 기업에 보내니 기업은 그것을 고쳐 쓰느라 힘들다”는 불평에 대학관계자들은 심기가 불편했고, 특히 인문학 관련자들은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업의 요구는 훨씬 구체적이다.
전경련은 기업입사시험에 한자시험을 필수화하도록 권장했고 또다른 기업 협의단체는 대학에서 읽기, 쓰기, 말하기 교육 좀 충실히 시켜달라 주문했다. 이를 국어국문과 전공자를 많이 배출해달라는 말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기업이 요구한 것은 이공계든 경상계 출신이든 이른바 의사소통능력(communication skills)을 갖춘 인재를 교육시켜달라는 것이다. 21세기의 노마드(nomadic)적 기업 환경에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균형 있는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문적 의사소통능력을 갖춘 인재임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개방화와 다원화의 시대에 있어 ‘열림과 소통’의 실천적 기능, 즉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수용하여 기획되고 교육된 인문적 소양이야말로 다가오는 미래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인재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자질이다. 이를 인문학 교육자가 제공하지 못한다면 누가 제공한다는 말인가?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가장 인문적인 것이 가장 실용적인 것이다’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제 인문학은 돌아오고 있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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