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문학인가!

9월이면 왠지 설렌다. 올해같이 지난한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는 감회는 더욱 새롭다 9월은 한 계절의 시작이자,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 9월에 얽혀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인생은 녹록지 않다. 백수를 누리는 시대라지만, 그 백년 세월은 고통의 바다이기 일쑤다. ‘죽자살자 취직해서 죽도록 일하다가 죽으면 뭐하나’라는 시쳇말은 부쩍 늘어난 과로사를 지목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는 마당이고 보면, 배부른 투정으로도 들린다
대학이 직업학교로 변질된 지는 꽤 오래다. 요즘 대학들 하는 짓을 보면 학생들의 생존을 위함인지, 자기 생존을 위함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대학들이 제 살기에 바쁜 것이다. 졸업생 취업률이라는 것도 6개월이 지나면 절반쯤 뚝 떨어진다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심각한 것은 기업의 생존율이다. 몇 년 전 LG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60년 이후 100대 기업의 평균 생존 나이는 10.4년이었다. 대우그룹, 쌍용그룹, 한일은행, 조흥은행 같은 이름들은 아직도 귀에 익다. 수년전에는 세계적인 전자회사 소니의 주식이 깡통이 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기업이나 은행들의 생존 연령이 10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건 죽자살자 취업 공부해서 30살쯤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40세 이후엔 다른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취업이 문제이긴 하지만, 나머지 60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큰 문제라는 뜻이다. 더욱이 40세 가장의 등짝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어린 자녀가 달려 있을 공산이 크다. 그 이후 인생은 자녀부양에 골몰하며 보낼 수밖에 없다. ‘제 논에 들어가는 물과 제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다’는 속담을 뒤집으면, 자식의 배고픈 울음 앞에 남의 집 담을 넘어다보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인생의 전반은 제 한 입 책임지려고 아등거리다가, 후반은 자식 먹이를 버느라 버둥거리다 끝날 듯한 것이 젊은이들의 ‘어두운’ 미래다. 제 삶을 즐기기는커녕 육신 덩어리 하나 영위하기에 급급하다가 끝날 형편이다.
요컨대 오늘날 젊은이들은 부모건, 학교건, 기업이든, 나라든 기댈 데가 없다. 인생을 제 스스로 설계하고 꾸리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이 지점에 “왜 인문학인가!”라는 질문이 자리한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가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눈의 문제와 인문학은 밀접히 관련된다. 인문학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심드렁한 것을 새롭게, 상식을 비상(非常)한 것으로 바꿔 보는 안목을 기르는 공부다. 가난은 살갗에 뼈저리게 닿는 감촉이기에 도리어 인문학과 친화적이다. 인문학은 관념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공부다.
집 주변의 개천을 보고 공자가 내뱉었다는 “아, 흘러가는 것이 이렇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라는 찬탄은 인문학의 의의를 한마디로 보여준다. 내내 풍경으로 여기고 심드렁하게 보아 넘겼던 주변의 개천물이 문득 자연(自然)을 체현한 주인공으로 돌출하고, 반면 세상의 주인으로 여겼던 자신은 손님으로 쪼그라드는 체험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또 죽고 난 후에도 흘러내리는 저 ‘보잘것없는’ 개천이야말로, 고작 백년도 채 못 살고 떠날 나의 생로병사를 지켜보는 주인공이 아니던가!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설고 새로운 것에 용기를 가지고 진입하는 힘이 인문학에서 나온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남의 살을 먹어야 산다. 하지만 생존에 머물지 않고, 생존의 의미를 따지고 새로운 눈으로 길을 찾는 것이 인문학이다. 그러니 가난도 하나가 아니다. 적빈이 있는가 하면 청빈도 있고, 경우에 따라 자발적 가난도 있다. 성경에선 ‘천국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했다. 가난함과 부유함, 곧 삶과 살림의 의미 그리고 사람됨을 뒤집어보고 깊이 바라보는 안목이 인문학의 주제다. 인문(人文)이라, ‘사람다움의 무늬’를 발견하는 공부가 인문학인 것이다.
모든 인문학에는 고전이 있다. 고전은 오래된 책이란 뜻이다. 오랜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은 까닭은 잘사는 삶을 더 잘살게 만드는 것이기보다, 죽음보다 아픈 고통을 사람답게 이겨나가는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어차피 항구적인 직장은 없고, 들어가도 고작 10년에 불과하다. 더욱이 인생은 단 한번밖에 없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후반 인생을 젊은 시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문득 ‘노자(老子)’라는 책이름이 범상치 않게 와 닿는다. 젊은이에게 늙어서야 알 지혜를 가르쳐주는 책이 고전이라는 의미로 읽혀서다. 올 가을엔 인문고전 읽기를 권한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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