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와 판단의 유연성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성향이 있다. 이것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르고 이것은 현대의 심리학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이다. 사람들의 이러한 인지 편향의 심리를 인지부조화이론의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 뇌인지심리학자인 이상아 서울대 교수는 ‘마음의 편향은 강력한 본능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감정이나 사회적 반응뿐만 아니라 물체 인식에서 생물 구분까지 편향된 직관들이 인간들의 마음 곳곳에 새겨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확증편향은 대개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믿음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얻는 단계에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고, 그다음 단계는 자신이 가진 믿음에 대하여 경직성을 보이는 것으로 이 두 번째 단계를 ‘사후 과잉 확신편향’이라 한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어떤 믿음을 갖거나 어떤 판단을 내린 후, 자기의 믿음과 판단을 고집스럽게 수호하는 것이다. 나는 이 두 번째 단계의 오류가 첫 번째 단계의 그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다음과 같은 말(<신기관>, 1620년)을 했다. “인간은 일단 의견이 채택되고 나면 모든 걸 동원해 그것을 뒷받침하고 동의하고자 한다. 반대되는 증거가 아무리 많아도 이를 무시하거나 경시한다. 그렇지 않다면 편견에 따라 증거를 구별하고 부분만 받아들인다. 이런 중대하고도 치명적인 사전 결정으로 인해 앞서 내려진 결론의 권위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 귀 열린 사람이 현명
우리나라에는 오래전부터 남들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문화가 있어 왔다.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귀가 얇아서 어떻게 큰일을 할 수가 있겠어?”라는 말을 한다. 남의 말에 자기의 의견을 쉽게 바꾸는 것을 ‘좋지 않은 행동’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고, 남의 말에 흔들리는 사람을 ‘팔랑귀’라며 놀리기까지 한다. 예전부터 주로 좋은 성과를 낸 사람들에 대해, ‘줏대가 있다’ ‘고집이 있다’ ‘일관성이 있다’면서 칭찬하는 문화가 있었다. 어떤 의견이나 사안을 결정하면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칭찬해 왔다.
하지만 요즘은 정보화 시대이다. 귀가 얇으면 더 좋은 경우도 많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배우고 나름의 의견을 정하면 된다. 그리고 의견을 정한 후에도 합리적인 정보가 있다면 자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한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사후 과잉 확신편향의 극단적인 예로는, 종교적으로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이 예언된 종말의 시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예언자가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역사상 그들이 예언한 인류의 종말의 날에 인류가 멸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미국에서 1954년에 토로시 마틴이라는 여자가 어느 외계의 별의 지구수호자들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며, 대홍수로 인하여 지구가 멸망할 것이지만 자기들은 비행접시를 타고 탈출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녀가 예언한 그 시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후에도 그녀의 신자들은 하나님이 계획을 바꾸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우리나라에서 1992년에 일어난 다미선교회의 종말론 사건도 이와 유사하다. 수많은 신도들이 재산을 바치고 휴거를 기다렸지만 예언된 시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도들 중 상당수는 휴거일은 결국 온다며 자신들의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예전엔 ‘줏대’ 있는 사람을 호평
사후 과잉 확신편향의 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베이컨이 400년 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자신의 의견이 잘못된 정보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에도 (대개는 그 정보가 틀리지 않았다고 우기며) 자신의 의견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사이비종교, 유사과학, 유사역사학을 믿는 것과 같은 거창한 예가 아니더라도, 건강, 정치, 교육, 육아 등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의견이나 믿음에 대해 지나치게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사고와 판단에 있어서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의견에 집착하지 않고 좋은 정보와 의견에 귀가 열려 있는 사람들이 현명한 사람들이다
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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