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예(禮)를 잃으면 사람의 품격도 무너진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1-08 19:15

공손함과 신중함, 용기와 정직함을 바로 세우는 마음의 기준


사진 제공 = ai 생성 이미지


사람은 누구나 좋은 성품을 지니고 살아가기를 원한다. 공손하고 신중하며 용기 있고 정직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존중받는다. 그러나 좋은 성품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덕목이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과 기준을 잃으면 오히려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 「태백편(泰伯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恭而無禮則勞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헛수고가 되고,

愼而無禮則葸

신중하되 예가 없으면 두려움에 빠지며,

勇而無禮則亂

용맹하되 예가 없으면 난폭해지고,

直而無禮則絞

정직하되 예가 없으면 각박해진다.


공자가 말한 예(禮)는 단순히 인사하는 방법이나 격식을 갖추는 형식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이며,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바르게 다스리는 내면의 기준이다. 인간이 가진 좋은 성품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휘되도록 이끄는 삶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공손함을 생각해 보자. 공손함은 상대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태도다. 그러나 예가 없는 공손함은 아첨과 굴종으로 변할 수 있다. 직장에서 상사의 잘못된 판단을 알면서도 승진이나 인사상의 불이익을 걱정해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 회의에서는 침묵하다가 상사의 의견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동조하고, 자신의 소신보다 윗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데 익숙해진다. 겉으로는 공손하지만 그 안에는 원칙도 책임도 없다. 진정한 공손함은 권력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옳고 그름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태도다.


신중함도 마찬가지다. 신중한 사람은 말과 행동에 앞서 한 번 더 생각한다. 실수를 줄이고 결과에 책임을 지려는 태도다. 하지만 지나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옳은 일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한다. 공직사회나 기업 조직에서 잘못된 관행을 발견하고도 자신의 자리에 불이익이 생길까 두려워 결정을 미루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규정과 절차 뒤에 숨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경우가 있다. 특히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재난 현장에서 보고와 결재만 반복하다 대응 시기를 놓친다면 그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책임 회피다. 신중함에는 정확한 판단뿐 아니라 필요한 순간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용맹함은 정의를 실천하는 힘이다. 그러나 절제와 책임이 빠진 용기는 난폭함으로 변한다. 오늘날 온라인 공간에서 이런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며, 여러 사람이 한 사람에게 몰려가 인격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진다. 때로는 정의를 외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까지 내세운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비난과 집단적인 공격은 정의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다. 진정한 용기는 다수의 목소리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 앞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데 있다.


정직함 역시 예를 잃으면 독설이 된다. 정직은 인간관계의 신뢰를 지탱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상대의 형편과 감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은 정직함이 아니라 무례함이 될 수 있다. 직장 동료의 실수를 여러 사람 앞에서 지적하며 망신을 주거나, 가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고도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는 경우가 그렇다. 진실을 말하는 것과 상대를 모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진실에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그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정치와 권력의 영역에서도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선거 때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약속하면서 당선된 뒤에는 국민의 목소리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정치인이 있다. 비판을 수용하기보다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이유로 모든 판단이 정당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은 타인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잠시 맡겨진 책임이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말과 행동에는 더 큰 절제가 필요하다. 권한이 있다고 예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예의 문제는 끊임없이 나타난다.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함부로 반말하거나, 운전 중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상대 운전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행동,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화와 배려보다 보복과 감정적 대응을 앞세우는 일도 그렇다. 자신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질서는 유지되기 어렵다.


디지털 시대에는 예의의 의미가 더욱 중요해졌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수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무책임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도 많아졌다. 댓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흔들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인격을 침해할 권리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말할 자유가 있다면 그 말에 책임질 의무도 함께 따라야 한다.


결국 공자가 말한 예는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인간의 행동을 바로잡는 기준이다. 공손함은 아첨이 되지 않도록 원칙을 지켜야 하고, 신중함은 비겁함으로 흐르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용기는 난폭함이 되지 않도록 절제해야 하며, 정직함은 독설이 되지 않도록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예는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다. 자신을 낮추되 비굴하지 않고, 신중하되 비겁하지 않으며, 용감하되 무모하지 않고, 정직하되 각박하지 않는 것. 이것이 공자가 우리에게 전하려 했던 예의 정신일 것이다.


세상은 지식이 많은 사람만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자신의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고, 자신의 권한을 어떻게 행사하며,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더 중요하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존중받는 것이 아니며, 목소리가 크다고 옳은 것도 아니다. 사람의 품격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에서 드러난다. 예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격식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의 질서다. 지식은 배움으로 쌓이고, 지혜는 경험으로 깊어지며, 인격은 예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나를 존중하듯 타인을 존중하고,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으며,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공손함은 원칙을 잃지 않아야 하고, 신중함은 책임을 피하지 않아야 하며, 용기는 절제를 잃지 않아야 하고, 정직함은 배려를 잃지 않아야 한다. 공손함에 원칙이 없으면 아첨이 되고, 신중함에 책임이 없으면 비겁함이 되며, 용기에 절제가 없으면 폭력이 되고, 정직함에 배려가 없으면 독설이 된다.


결국 예를 아는 사람은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예를 실천하는 사람은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사람의 진정한 품격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완성된다. 예를 잃으면 관계가 무너지고, 관계가 무너지면 공동체가 흔들린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 그 출발점은 바로 예(禮)를 실천하는 마음에 있다.



시와늪 대표 배성근(시인.수필.소설.평론(비평).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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